[영화제]
[영화제] 아시아의 진실 찾기
2012-03-07
글 : 송경원
부산국제영화제 AND 쇼케이스, 3월7일부터 11일까지 인디플러스에서
<오래된 방의 소리>

영화가 꿈을 담는 기계라면, 다큐멘터리는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모든 다큐멘터리가 딱딱하게 정해진 틀과 규칙에 따라 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큐멘터리의 정신은 시대에 발맞춰 진화하는 데 있다. 기본적으로 사실영상의 객관적 기록을 추구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객관과 사실 여부를 넘어서 카메라-눈에 담긴 또 하나의 진실, 그리고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의 핵심이다.

그런 의미에서 3월7일부터 11일까지 열리는 인디플러스 개관 1주년 기념영화제에서 소개될 여러 프로그램 중에서도 아시아 다큐멘터리 교류전의 의미는 각별하다. 인디플러스와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주최로 열리는 이번 교류전에서는 최근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흐름과 경향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AND) 지원작 중 10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아시아의 오늘’과 그 속에서 숨쉬는 ‘우리의 얼굴’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달려가보자. ‘진실’이란 이름의 진주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Jam Docu 강정>은 해군기지 건설로 말이 많은 제주도 서귀포시 최남단 강정마을의 모습을 담았다. 8명의 감독이 따로 또 같이 담아낸 강정마을의 모습은 때론 아름답고, 때론 구슬픈 목소리로 강정마을의 오늘과 내일을 이야기한다. 첨예한 정치적 대립보다는 강정마을과 마을 사람들, 변화하고 갈등하는 강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한 노력이 돋보인다. 비슷한 의미에서 <311>은 2011년 3월11일에 있었던 대지진 이후 일본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내려 한다. 세 감독은 각자 미묘하게 다른 지점에서 폐허가 된 지역의 풍경,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절망, 아직도 계속되는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희망의 연기까지 포착해낸다.

긴 시간을 두고 인물을 관찰한 다큐멘터리도 있다. 리칭휘 감독의 <돈과 사랑>은 외국인 여성 노동자의 삶을 10년 넘게 따라간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만까지 건너와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여성들에게는 일체의 개인적인 삶이 주어지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정작 가족을 볼 시간조차 없어 가족과 점점 멀어지는 여인들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돈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들의 강인함이 더욱 인상적이다. 한편, 20여년간의 개인의 삶을 기록한 샌딥 레이 감독의 <오래된 방의 소리>는 그것으로 이미 하나의 작은 우주에 다름없다. 반면 김철민 감독의 <걸음의 이유>는 민중가요가수이자 작곡가인 ‘백자’라는 인물을 통해 10년에 걸친 민중운동 진영의 변화를 담아냈다. 투쟁의 현장을 누비며 외길인생을 달려온 인물 뒤로 보이는 시대와 역사의 기억은 익숙해서 서글픈 시대의 자화상을 떠올린다.

다큐멘터리는 문자 그대로 기록이다. 기억, 추억, 역사가 필름 위에 새겨지며 진실이 쌓여간다. 위신 감독의 <아련한 봄빛>은 바로 이러한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넋두리, 혹은 소중한 과거로 떠나는 마지막 여행이다. 중풍으로 쓰러진 할머니의 마지막 나날은 가족과 다투는 오늘의 삶인 동시에 점점 선명해지는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기억 그 자체다. 단순한 기계적 기록을 넘어서 가슴 울리는 이야기로 번져가는 할머니의 추억은 아름다운 소리로 울리며 우리가 잃어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데이비 초우 감독의 <달콤한 잠>은 좀더 구체적이고 집단적인 기억이다. 1975년 크메르루주 정권의 숙청 속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영화인들은 캄보디아영화의 역사를 화면에 풀어놓는다. 젊은 영화인들이 캄보디아영화의 찬란했던 순간을 복원해나가는 과정은 단순한 기억과 기록의 복원이 아닌 대중의 욕망과 희망의 부활이다. 어제를 통해 오늘을 기억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다큐멘터리의 본령이 무엇인지 다시금 떠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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