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흥미로운 ‘말(言)의 향연’ <로맨스 조>
2012-03-07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말(馬) 그림이 벽에 걸린 모텔, 이곳에 노부부가 등장한다. 이들은 ‘담’(김동현)이란 청년을 불러 행방이 묘연한 아들의 뒤를 캐묻는데, 그렇게 담의 ‘로맨스 조’(김영필)에 대한 회상이 시작된다. 감독 데뷔를 준비하던 ‘조’는 배우의 자살 소식을 듣고 우울해지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숨을 끊겠다고 결심한다. 손목을 긋는 순간, 그는 어린 시절 첫사랑을 떠올리고 목숨을 건진다. 영화 전반부의 노부부 이야기는 극의 액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내 ‘이감독’(조한철)의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단순한 이중구조를 벗어난다. 다방종업원(신동미)이 옮기는 조의 이야기가 앞서 담이 언급했던 스토리와 연결되고, ‘담과 레지’의 관계가 파악되지 않으며 관객은 혼란스럽다. 이후 다방종업원이 담의 ‘시나리오 속 가상인물’이란 것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적어도 세겹의 외피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명의 주인공을 여러 화자가 소개하는 화법은 대개 내면의 다양함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로맨스 조>의 프레임은 다양성이 아닌 단순한 액자의 개수 늘리기, 그 자체를 위한 설정처럼 보인다. 플로베르의 소설 <보바리 부인>을 보는 양 영화는 스타일을 통한 ‘형식의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게다가 여타의 메타영화들과 다르게 <로맨스 조>는 바깥에 놓인 이야기일수록 더욱 비현실적으로 그리려는 경향을 띤다. 때문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관객은 판단을 유보하게 되고, 마지막에서야 진짜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극이 메타시네마보다 메타픽션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홍상수의 조감독 출신인 이광국이 연출했고, 로테르담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화제가 됐다. 작위적으로 보이기 쉬운 구조의 문제를 흥미로운 ‘말(言)의 향연’으로 재연한 독특한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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