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DVD] 제2의 지구에 또 다른 내가 산다면
2012-03-09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어나더 어스> Another Earth (2011)

감독 마이크 카힐
상영시간 92분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음성포팻 DD 5.1 영어
자막 한글 자막 / 출시사 유이케이
화질 ★★★★ / 음질 ★★★★ / 부록 ★★☆

원래 <레스트리스>의 DVD를 소개하려고 했다. 특별한 부록을 수록했기 때문이다. <레스트리스>의 촬영 도중 구스 반 산트는 배우들에게 장면마다 무성영화 버전의 연기를 따로 주문했다. 그리고 그걸 따로 편집해 76분짜리 무성영화 <레스트리스>를 만들었다. 추가 장면은 없고 몇 장면은 편집됐으며 음악도 유성영화 버전과 다르게 사용됐다. <싸이코>를 리메이크했을 때처럼 반 산트의 괴상한 취향이 다시 발동한 것이다. 고전적인 ‘컬럼비아’ 로고와 연기의 미묘한 차이 등 신경 쓴 흔적이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전체적으로 별다른 감흥은 없다. 이유는, <아티스트>가 그렇듯이 무성영화 특유의 유령성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주변 사람들의 음성이 섞인 배경음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거슬린다. 반 산트의 팬이라면 또 모를까, <레스트리스>의 무성영화 버전을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근래 나온 한국판 DVD 중 대신 선택된 건 <어나더 어스>다. 마이크 카힐이 7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작품으로,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독립영화계와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은밀한 SF영화가 한국에서 DVD로 출시된 것은 의외다. 폭스서치라이트가 배급한 <어나더 어스>는 본토에서조차 소수의 관객과 만났을 뿐인 작품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할리우드 메이저의 인디 라인업들이 홈비디오로나마 계속 출시됐으면 좋겠다. SF영화가 표현 방식과 제작 규모에 있어 양극단을 오가는 가운데, 초저예산으로 제작된 <어나더 어스>는 적게 보여주나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진영을 대표하는 예라 하겠다. 외형이 너무나 소박해 <가타카> 같은 영화를 초호화판으로 보이게 할 정도다. 카힐이 부모 집을 배경으로 무작정 촬영을 시작했을 당시 그의 은행 잔고는 100달러에 불과했다 한다. 하지만 그가 촬영과 편집을 겸해 내놓은 결과물은 어지간한 SF블록버스터보다 훨씬 아름답고 철학적이다.

로다는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는 17살 소녀였다. MIT 합격을 통보받은 날,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던 그녀는 ‘생명체가 사는 행성의 발견’을 언급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그녀가 밤하늘을 바라볼 동안 그녀의 차는 맞은편에 정차한 차를 들이받는다. 임신한 여자와 아들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남자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 4년형을 마치고 세상에 나와 청소부로 일하던 로다는 남자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용서받지 못할 과거를 지닌 채 외톨이의 삶을 유지하는 여자와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겨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는 남자가 만난다. 두 사람을 포함한 전 지구인 앞으로 ‘제2의 지구’가 나타나는데, 거기엔 나를 빼닮은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다. 생각해보라, 매 순간 우리는 머릿속 자신에게 묻고 대답하지 않나. <어나더 어스>는 또 다른 자신이 외부에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수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올 상황이다. 누가 누구의 그림자일까, 그곳의 내가 이곳의 나보다 뛰어날까? 다른 나도 나처럼 뭔가 후회하며 살까? <어나더 어스>는 대안적 현실, 즉 우연과 기회라는 관점으로 평행우주를 해석한다. 나를 객관화하고 나를 자유롭게 해방함으로써 두 인물은 과거에 얽매인 삶에서 미래의 삶으로 이전하게 된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다. 사건이 아닌 질문에 비중을 두어 저예산 SF영화의 한계를 극복한 <어나더 어스>는 마치는 지점에서까지 물음표를 거두지 않는다. 엄청난 깊이는 없을지 모르지만 당장의 현실과 가상의 우주를 연결한 시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DVD는 뮤직비디오(4분), 7개의 삭제장면(9분), 홍보영상 두 가지(5분), 예고편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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