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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IEW] 가짜 온기는 이 집에 없다네
2012-03-16
글 : 유선주 (칼럼니스트)
KBS 새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을 기대함
<넝쿨째 굴러온 당신>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니까!”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다시는 말대꾸하지 않을게요.” 며느리 얼굴에 물을 끼얹은 시어머니가 곧이어 아들까지 낚아챈다. “아들아, 넌 여기 있어야지. 넌 이 집의 장남이잖아.” 며느리의 황당한 표정 위로 스탭 스크롤이 올라간다. ‘제작PD 차윤희.’ 뽕끼 충만한 주제곡까지 그럴싸하게 재연한 저 막장드라마의 정체는 KBS 새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극중극이다. 외주사의 드라마 제작PD로 일하는 차윤희(김남주)는 ‘결혼을 안 하면 안 했지 내 인생에 시집살이란 없다’를 모토로 맞선을 거듭한 끝에 미국으로 입양되어 잘 자란 ‘능력있는 고아’ 테리 강(유준상)을 만났다. 남들이 시집살이 푸념을 늘어놓는 명절에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다니는 흡족한 허니문. 한국 가족을 찾는 데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테리가 고맙고 또 안쓰럽지만 윤희는 긴 말을 보태지 않는다.

한편 윤희 부부가 이사하게 된 효자동 상가 건물의 2층 전셋집은 1층에서 오래된 단팥빵 집을 운영하고 2, 3층을 살림집으로 쓰는 방씨 가족 소유다. 다섯살 때 잃어버린 아들 귀남이 때문에 30년간 애태우던 효자동 식구들. 그러니까 완벽한 남자 테리 강은 방테리고 방귀남이며 대가족의 잃어버린 장남이었던 것. 차윤희는 그토록 거부하던 ‘시월드’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게 된 셈이다. 저 극중극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의 복선이며 또한 갈등을 구태의연하게 풀지는 않겠다는 작가의 자신감이기도 하다. MBC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으로 김남주와 거듭 작업해온 박지은 작가는 대기업 부인회의 사외정치나 부인이 복직한 회사의 사내정치로 부부관계가 꼬이는 등 부부의 세계를 집 밖으로 확장하고 당대의 화젯거리를 성실하게 관찰해 풍자하는 데 특장이 있다. 모정과 부정과 핏줄이 중한 주말 가족극에 자리를 잡았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은 때로 당사자에서 관찰자의 시각으로 물러서며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봉씨네 안주인 엄청애(윤여정)는 동서를 배웅하다 귀남이를 만나면 알아볼 수 있겠냐는 물음에 애잔한 음성으로 말한다. “…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내 속으로 낳은 내 새끼잖아. 본능적으로 운명적으로 딱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꿈결 같은 음악이 흐르는데 쓰레기를 내다버리러 내려온 테리가 멀뚱한 얼굴로 인사하고 슥 지나간다. “썩을 놈… 옆집에 새로 이사 온 부부인데 괜히 들였어.” 시트콤이라면 효과음이 들어갈 타이밍. 막장드라마는 물론이고 가족극의 운명 같은 모정을 놀려먹는 기개에 웃음이 터진다. 아귀가 안 맞는 모성애와 가차없는 관찰자는 윤희네도 있다. 앞서 윤희 부부가 효자동으로 이사를 하게 된 발단도 윤희 엄마가 딸 부부가 맡겼던 목돈을 아들 사업자금으로 써버린 까닭이다. “내가 모성애가 강한 걸 어떡해.” “엄마 모성애는 왜 오빠한테만 뻗치냐고!” 밖에서는 경우 바른 모친과 딸이 서로의 부조리를 들추는 풍경은 여느 집도 다르지 않을 테지.

고부갈등의 씨앗이 쑥쑥 자라고 있지만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막장으로 치닫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어느 순간 부는 현실적인 찬바람과 균형감 때문이다. 나는 막장보다 간장, 신장, 골수가 오가는 주말 가족극이 더 무서운 사람이다. 구성원의 희생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억지화해는 일상의 가족들간에도 엄연하지만 희생양의 겸양과 미소까지 요구하는 가족드라마의 가짜 온기는 배알이 뒤틀리더라. 돼먹지 못한 불효자식으로 효자동에 불어닥칠 대파란은 꽤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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