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실연의 고통이 크시겠지만 너무 그렇게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은 그만 지으시고….
=당신이 제 기분을 얼마나 이해하시겠어요. 물론 잊어야 한다는 건 압니다. 그래도 아직 화가 풀리진 않아요. 그녀에게 그런 과거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이래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흑흑….
-요즘 SNS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제는 휴대폰 뒤져봐야 다 소용없고요. 트위터 DM이 제대로예요. 진정하세요.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그녀가 트위터를 하는지도 몰랐어요. “요즘에 친구들이 트위터 많이 하던데 자긴 안 해?” 하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난 귀찮아서 그런 거 안 해, 시간낭비야. 그런 거 하는 사람들 저능아로 보여” 그랬거든요. 그랬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난리도 아니더라고요. 옛 남친들하고도 얼마나 잘 지내는지. 뭘 깨끗이 정리했다고 참.
-도대체 뭘 보셨기에?
=왜 너는 나를 사랑해? 내 어떤 점이 좋아? 나의 뭘 보고 반했어? 제가 그런 얘기 물으면 그렇게 귀찮다며 화내던 그녀가 누가 사랑에 대한 고민을 멘션으로 올려놓으니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완전 여자 알랭 드 보통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몸이 안 좋다고 문자를 보내도 통 답이 없다가 한참 뒤에 “약국 들러. 푹 쉬어”라고 심드렁하게 한줄로 답하던 그녀가, 어떤 남자가 “콜록콜록” 한마디 올렸더니 “아무개님 왜 그러신 거예요. 요즘 독감이 얼마나 심한데용. ㅠㅠ 죽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 싶네요. 꼭 병원 가서 주사 맞으삼. 빠샤빠샤!!!” 그렇게 불과 5분 만에 답하더라고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원.
-섭섭하긴 해도 그 정도 일이야 사랑한다면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일 아닌가요?
=뭐 그렇긴 하죠. 하지만 그 일로 싸우면서 다른 더 많은 걸 알게 됐어요.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어요. 그걸 뒤늦게 깨달은 제가 바보죠.
-그렇게 천천히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군요. 그런 상황 이해합니다.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얼마나 잔인한 고문 도구가 되는지 아세요? 전화나 문자를 받아야만 하는 사람은 그 ‘밀당’의 전개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릴 수밖에 없어요. 이미 떠난 스쿨버스는 되돌아오지 않더라고요.
-그나저나 그럴 때 화라도 내보셨나요? 왜 그러냐고?
=당연히 불같이 화를 냈죠. 그랬더니 뭐라더라? 평생 오해를 풀다가 죽는 게 인생인 거 같다나 뭐라나. 그럴 땐 말이죠. 오해라는 단어를 꺼내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시 시작하자고 제가 매달리는 것처럼 착각했나봐요. 그렇게 변명도 사과도 않고 오해라며 먼 산 바라보고 있으면 멋있게 보이는 줄 아나봐요. 그래도 가끔 그녀의 무성한 겨털은 그립습니다. 겨털로 제 귓가를 간지럽힐 때의 그 감촉은 정말… 이제 그만할게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