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시네마톡]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미로
2012-03-13
글 : 남민영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씨네21>과 CJ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하는 시네마톡: <로맨스 조>

3월6일 CGV대학로에서 열린 <씨네21> 주성철 기자와 김영진 평론가의 <로맨스 조> 시네마톡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극중 어린 로맨스 조로 출연한 배우 이다윗과 연출을 맡은 이광국 감독이다. 특히 <시>와 <고지전>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이다윗의 등장에 여성 관객은 연방 “귀엽다”며 환호했다. 관객 앞에 선 것이 쑥스러운 듯한 이다윗의 수줍은 웃음처럼 <로맨스 조> 역시 귀여우면서도 기묘한 매력을 지닌 작품이었다.

<로맨스 조>는 ‘씨네21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 2010’에 당선되어 만들어졌다. <극장전>의 연출부, <해변의 여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의 조감독으로 5년 동안 홍상수 감독과 일한 이광국 감독은 탄탄히 쌓아올린 내공으로 장편영화에 도전했다. 이제 막 입봉한 신인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조>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옐로 파인트리상을 수상했고 이어 전세계 인디영화들의 축제인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부문과 뉴 디렉터스 뉴 필름스 페스티벌에 초정되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는 인기배우 우주현의 자살 소식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출연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며 우주현에게 각별한 감정을 가졌던 로맨스 조(김영필)는 영화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낙향한다. 자살을 생각하지만 곧 실패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다방 레지(신동미)를 만난다. 로맨스 조는 다방 레지에게 잊고 있었던 첫사랑 초희(이채은)에 대한 추억을 털어놓는다. 때마침 레지의 다방으로 사라진 엄마를 찾는 소년(류의현)이 찾아온다. 엄마의 행방을 찾을 단서는 다방의 주소가 적힌 편지 한통과 사진 그리고 엄마의 이름 초희다. 한편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 이 감독(조한철)은 심심하던 차에 자신이 머무르는 모텔로 다방 레지를 부른다. 다방 레지는 로맨스 조와 그의 첫사랑 초희 그리고 엄마를 찾으러 자신을 찾아온 한 소년의 기막힌 인연을 이 감독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방 레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묘한 인연이 필연인지 아니면 단순한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인물들은 종종 그들이 모두 동일 인물인 것처럼 굴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발을 빼 숨바꼭질을 연상시킨다. 초희와 로맨스 조, 엄마를 찾는 한 소년, 다방 레지에게서 시작된 미스터리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영화”라는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평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며 한 군데로 모아지기도 하고 곧 다른 길을 찾아 뻗어나가기도 하는 미로 같은 매력을 선사했다.

홍상수 영화 속 유준상의 어린 시절?

주성철 기자는 이광국 감독의 특별한 이력 때문인지 그가 홍상수 감독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했다. 이광국 감독은 “이런 질문은 홍상수 감독님과 일할 때부터 예상했던 질문”이라며 말을 이었다. “일단 감독님과 일하는 게 너무 재밌었고 작업을 할수록 글쓰기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스스로의 발전을 느꼈다. 사실 우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누군가의 영향을 받지 않나. 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부정하는지 모르겠다.” 그는 <로맨스 조>가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끝내고 구상한 작품이라 했다. “현장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어느 시점부턴 내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막상 뭘 써야 할지 헤맸다. 여태껏 영화만 해왔는데 정작 하고 싶은 얘긴 없는 건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엉뚱한 이야기를 만들지 말고 나처럼 이야기가 절실히 필요한 한 남자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었다. 또 그 시기 관심을 가졌던 소재가 소문이었다. 그래서 소문과 남자의 이야기를 한데 풀었다.” 이광국 감독의 이야기를 듣자 주성철 기자가 재밌는 감상평을 내놨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김상경이나 유준상의 어린 시절이 항상 궁금했는데 그 어린 시절을 <로맨스 조>에서 본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재밌더라.”

로맨스 조가 자신의 첫사랑을 회상하는 부분에 어린 로맨스 조로 등장하는 이다윗은 시종일관 쑥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10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이채은과 호흡을 맞춘 이다윗은 보트 위에서 입맞춤을 나누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일단 대본에 써 있는 대로 하긴 했는데 사실 그 장면 찍을 때 채은 누나와 눈 마주치기도 민망했다. 그래도 꾹 참았다. (웃음)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 장면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이창동, 장훈, 이광국 등 굉장히 좋은 감독들과 일하고 있는데 그중 현장에서 가장 독한 감독이 누구냐”는 김영진 평론가의 짓궂은 질문에도 이다윗은 기죽지 않았다. “독한 거로 치면 이광국 감독님이 가장 안 독했다. 아무래도 이창동 감독님이나 장훈 감독님 현장에는 선배 연기자분들도 많고 내가 조금 긴장해 있었다. 다른 현장에선 감독님이 지시하면 지시한 대로 하고 틀리면 수정하고의 반복이었는데 이광국 감독님과는 서로 상의하고 고민하면서 작업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김영진 영화평론가, 이광국 감독, 배우 이다윗, <씨네21> 주성철 기자(왼쪽부터).

서사의 틀을 깨부수다

달아오른 분위기는 작품에 대한 김영진 평론가의 심도 깊은 질문으로 접어들면서 차분해졌다. “장선우, 홍상수 둘 다 여관방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로맨스 조>의 여관방신을 보니 이광국 감독이 그 두 거목을 밀어내는 거장이다. (웃음) 특히 남자의 속옷이 엉덩이에 반쯤 걸려 있는 장면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디테일은 원래 시나리오에 있던 것인가?” 이광국 감독은 “자세한 디테일들은 오히려 현장에서 나온 것이 많다. 책상에서 떠올릴 수 있는 생각과 현장의 공간 그리고 시간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는 다른 것 같다. 그래서 최대한 현장에서 이런 디테일들을 발견하려고 애썼다”며 디테일의 비결을 풀어놓았다.

이어 관객과 질의응답시간에도 질문이 끊이지 않으며 훈훈한 분위기가 지속됐다.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할 때쯤 아쉽게도 시간이 끝으로 치달았다. 시작과 마찬가지로 이날 시네마톡의 끝맺음 역시 김영진 평론가의 몫이었다. “스승인 홍상수 감독이 모던이라면 이광국 감독은 포스트 모던까지 밀고 나갔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나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나의 이야기가 아닌 구조다. 즉, 서사의 일반적인 틀을 깨부순 거다. 하나를 깨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평이 열린다. 이 영화는 통속적인 것과 새로운 서사를 접목해 재밌는 것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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