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촌의 고급 아파트에서 미모의 아내 연주(백설아)와 사는 태수(김영훈)는 보증을 잘못 서 집이 넘어갈 위기에 처한 상태다. 태수는 집을 지키기 위해 위장 이혼을 하고 부산의 허름한 고시원에서 지낸다. 고시원에는 총무 마 선생(김종수),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청년 수혁(김범준), 여고생 세라(유애경)와 그녀의 아버지 신욱(이광수)이 상주해 있다. 아파트에 살던 때보다 고시원 생활이 더 편안해 보이는 태수는 하얀 교복이 잘 어울리는 맨 얼굴의 세라에게 자꾸 눈길이 머문다.
그로테스크한 도입부는 아내의 신경질적인 쇼팽 연주로 이어진다. 어두운 아파트는 고급 가구로 꽉 차 있고, 섹시한 아내의 눈은 늘 욕망으로 번들거린다. 가구 하나 없이 썰렁한 고시원이 오히려 밝고 넓어 보일 정도다. 콘트라스트가 강한 아파트와 고시원 장면이 교차편집되는 부분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처럼 읽히고, 제 한몸 지키려 애쓰는 인간들에 대한 관찰자적 연민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의 정도와 상관없이 집이 없다는 사실은 존재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집을 옮기자는 태수의 제안에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연주도, 딸의 몸을 팔아 방세를 해결하는 신욱도 집이 흔들릴 때 악마가 된다. 악마들이 사라지고 둘만의 집을 갖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건만 세라도, 태수도 집을 얻은 뒤가 더 불행해 보인다. 태수에게 “너 같은 건 남자도 아니”라고 악을 쓰는 연주나, “다 너를 위한 행동이었다”고 세라를 안아주는 신욱이나 그저 살을 맞대고 지낼 가족이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진정한 행복은 부동산 계약이 아닌 사람의 온기로 맺어진 약속에서 비롯한다는 메시지를 <홈 스위트 홈>은 전하고 싶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