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talk]
[Cine talk] “솔직하면 통할 것 같다”
2012-03-20
글 : 이영진
사진 : 백종헌
<로맨스 조> 다방 레지 역의 신동미

<로맨스 조>의 다방 레지는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재미난 이야기 좀 해달라”고 칭얼댄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사연은 좀처럼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게 이 캐릭터의 매력이다. 그녀는 처음엔 단지 꼬인 이야기의 실타래를 푸는 가이드 역할에 그치는 듯 보이지만 영화가 끝난 뒤 관객은 알게 될 거다.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인 그녀의 신산한 삶의 궤적을 말이다. 탤런트로 연기를 시작한 지 11년, 신동미가 복화술을 펼치는 다방 레지 역을 받아들고 한참을 망설였던 건 두려움이 아니라 흥분 때문이었다.

-김태우가 추천했다고 들었다.
=(김)태우 오빠에게 시나리오가 갔던 모양이다. 태우 오빠가 전화를 해선 다방 레지 역할이 나랑 어울린다고 했다. 태우 오빠는 <내 청춘에게 고함>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해졌는데, 이번에도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정작 이광국 감독이 캐스팅 제의를 했을 때는 저어했다던데.
=3개월쯤 지나서 감독님과 미팅을 했는데, 그날 밤에 전화를 주셨다. 꼭 해달라고. 다음주에 전화드리겠다고 하고 미팅 때 받은 시나리오를 펼쳤다. 그런데 다방 레지 역할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화자인 동시에 인물이고, 또 모든 캐릭터와의 연결고리이고. 밑바닥을 사는 여자이지만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심오한 말을 하고. 그래서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감독님이 이참에 한번 도전해보라고 설득하셨다.

-흥행감독을 대할 때, 로맨스 조를 대할 때, 아이를 대할 때 캐릭터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GV 때 한 관객이 “1인다역을 하셨는데요” 그러더라. (웃음) 어떻게 해야 일관되면서도 다르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외려 감독님이 걱정을 줄여주셨다. 구체적인 것 딱 하나만 잡고 가자면서. 하나로 줄이진 못했지만 이 여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단 하루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했다. 단,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가장 희망적인 캐릭터라고 봤다. 리허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민이 해결되기도 했다. 내가 기자를 대할 때와 매니저를 대할 때와 홍보팀을 대할 때가 다르듯이, 다른 캐릭터를 만나면서 얻는 것들이 있으니까.

-주로 실내 촬영이 많았다.
=(이)채은이가 정말 부러웠다. 난 여관방 아니면 다방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우울하고 갑갑하고. (웃음)

-롱테이크 촬영은 이전에 많이 경험하지 못했을 텐데.
=좁은 공간에서 대화를 하면서 다양한 동선을 만들어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흥행감독과의 첫 신은 무려 8분짜리다. 다들 8분짜리라고 생각은 안 하시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귀신 봤다고 소문내서 제작진을 겁먹게 했다던데.
=귀신 본 거 맞다. 가평의 모텔에 머물 때였다. 여배우라고 큰 방을 주셨는데, 자려고 누웠더니 화장실 변기가 막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물 내려가는 소리도 들리고. 무서워서 매니저에게 전화했는데 안 받고, 조감독님도 안 받고. 결국 감독님 방에 전화해서 여자 스탭 중 한명과 같이 자겠다고 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샌 뒤 아침에 퀭한 눈으로 촬영하러 갔는데 감독님도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하시더라. 자는데 누가 머리를 툭 치고 갔다는 거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가 새벽 4시에 내 전화 받고 뒤늦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면서. 내가 잤던 방에서 다음날 주무신 촬영감독님도 샤워기 물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날은 스크립터가 잠을 자는데 누군가 자신의 이불을 마구 잡아끌었다고 하고.

-굉장히 피곤한 일정이었나 보다. (웃음) 독립장편영화의 경우, 제작비가 넉넉지 않다. 촬영일정이 매우 빡빡하고 고됐을 텐데.
=배우나 스탭이나 일정 시간 안에 이 장면을 어떻게든 찍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다들 예민하고 날카롭다. <꼭 껴안고 눈물 핑> 때도 그랬다. 그런데 난 오히려 이렇게 날선 분위기가 더 좋다. 긴박한 상황이 시너지를 낼 때도 있고.

-일찌감치 배우가 되려고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공부가 싫어서였다. 공부는 싫은데 대학은 가고 싶고. (웃음) 연기의 ‘연’ 자도 모르고 계원예고에 들어갔는데,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보고 반했다. 그래서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뮤지컬 무대를 꿈꿨다.

-노래를 잘하나.
=음정과 박자 맞추는 정도다. 이광국 감독님과 노래방을 간 적이 있긴 한데, 감독님은 칭찬을 입에 달고 다니시는 분이라서.

-뮤지컬 배우 대신 탤런트를 선택한 이유는.
=친구가 원서를 대신 냈다. 당시 탤런트 시험은 한달에 한번씩 예선을 치렀다. 석달 정도 예선 통과자를 모아서 심사하는 식이었다. 그랬는데 8월 예선을 준비하던 친구가 어떤 테스트를 하는지 궁금한 나머지 7월 예선에 나를 밀어넣었다. 막상 들어가서 보니 같은 기수 친구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내 나이가 그때 25살이었는데, 딱 커트라인이었다. 어린 친구들과 경쟁이 되겠나. 열심히 하는 걸로 승부보자는 마음이었다.

-이전 출연작 중에선 드라마 <뉴하트>의 마취과 의사 조민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도약점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정작 이후 드라마 출연은 뜸했다.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우울증까지 왔다던데.
=우울증은 배우의 직업병이다. 매일 자아를 찾아야 하니까. 서른 넘어서 우울증은 계속 안고 가는 것 같다. 그래도 <로맨스 조>의 대사처럼 솔직하면 통하지 않을까. 아직까지 해본 역할이 많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신인배우 같지만, 평생 연기에 도전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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