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터뷰]
[김도훈의 가상인터뷰] 과연 누가 절 연기할 수 있을까요?
2012-03-21
글 : 김도훈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의 비비안 리

-비비안 리. 누가 뭐래도 전 당신이 마릴린 먼로보다 더 아름다운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러지 말아요. 젊음은 이미 떠나갔고 저는 마른 낙엽처럼 시들어가는 중이니, 활짝 피고 있는 금발의 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하답니다.

-갑자기 천상병 시인의 시구가 떠오르네요. ‘나도 모르게 젊음이 다 가버렸으니 어찌 부르짖지 못하겠는가. 다시 다오 청춘을! 그러면 나는 뛰리라. 마음껏 뛰리라.’
=아름다운 시네요. 하지만 전 부르짖고 싶지 않아요.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걸요. 마음은 뛰리라. 그러나 몸은 뛰지 못하리라.

-하지만 비비안 리 당신은 중년의 나이에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물론 이해할 수 있어요. 남편인 로렌스 올리비에가 <왕자와 무희> 연극의 주연이었던 당신을 거부하고 젊은 마릴린 먼로를 영화판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을 때의 기분이란, 저주스러운 것이었을 테죠.
=저주요… 그래요. 잠시 저주했어요. 마릴린을 저주했던 것도 아니고 로렌스를 저주했던 것도 아니에요. 잠시 머물다가 사라진 젊음을 저주했을 뿐이죠. 거대한 스크린에 비칠 내 주름이 저를 막아세웠다는 사실을 잠시 저주했을 따름이죠.

-요즘이라면 보톡스라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보톡스요? 저는 연기자예요. 오스카를 두번이나 받은 배우예요. 보톡스는 얼굴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가 없다더군요.

-그래도 좀 혹하시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럴 순 없어요. 얼굴이 팽팽한 한국 주말 드라마 중년 여배우들처럼 모든 감정 표현을 부릅뜬 눈으로만 할 순 없는 일이니까요. 얼굴 근육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배우에겐 포기할 수 없는 거랍니다.

-아, 가만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필요했던 건 보톡스가 아니라 프로작(항우울증약)이었을지 도 모르겠어요. 당신은 지나치게 이른 나이에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났죠. 저는 당신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지금도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줄리아 오몬드가 당신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는 당신 입장에서 그 일주일을 그린 영화를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목은 <비비안, 올리비에, 그의 여배우 그리고 그녀의 정부>.
=그것도 재미있겠네요. 하지만 누가 절 연기하죠? 솔직히 줄리아 오몬드가 절 연기하는 게 그리 탐탁지는 않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군요.

-갈색머리의 우아한 중년 여배우라면, 그리고 당신처럼 온화하면서도 선이 강렬한 얼굴이라면, 글쎄요. 지금 떠오르는 건 애슐리 저드 정도네요.
=안젤리나 졸리는 어때요?

-단, 입술에 보톡스를 맞지 못하게 미리 계약 조건을 내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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