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연날리기 장면으로 시작한다. 초점이 불분명한 남자의 눈은 공중에서 흐느적대는 연을 보는 대신 몸에 부딪히는 바람을 읽으려고 하는 것 같다. 실타래를 쥐고 있는 남자의 옆에는 키 작은 여인이 서 있다. 영찬씨는 시청각장애인이다. 척추장애를 안고 있는 순호씨는 영찬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달팽이의 별>은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전구도 갈고 산책도 하는 이들 부부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사건이 되는, 실로 거대한 이야기가 이 일상에 담겨 있다.
이승준 감독은 2년간 이들 부부를 따라다니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영화가 집중하는 건 “태어나서 한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 없었다”는 영찬씨가 순호씨의 눈과 귀를 빌려 세상을 지각하는 과정이다. 점화(點話)로 대화하는 부부의 손이 지속적으로 클로즈업되는 것도 그래서다. 점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처음에 이 낯선 행동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클로즈업이 계속되면 이들 부부의 손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산책을 나간 영찬씨가 나무를 껴안고 나무와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에서도 관객은 그런 신비로운 경험을 다시금 한다. 마치 영찬씨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듯한 착각을 하는 것이다. 내레이션으로 삽입되는 영찬씨의 자작시에는 “사람의 눈, 귀, 가슴은 대부분 지독한 최면에 걸려 있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어 세계를 전혀 모른 채로 늙어간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 눈과 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처럼 우주인이 되면 된다”고 조언한다. ‘손가락 끝으로 꿈꾸는 우주인’이 선사하는 별나라 여행서는 다큐멘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무척 황홀하고 감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