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에드거> J. Edgar(2011년)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상영시간 137분
화면포맷 2.40:1 아나모픽 / 음성포맷 DD 5.1
자막 영어, 한글 자막
출시사 워너홈비디오 & 해리슨 앤 컴퍼니
화질 ★★★☆ / 음질 ★★★★ / 부록 ★★
FBI가 애초부터 막강한 이름이었던 것은 아니다. 총기를 소지하지 못하며 검거 능력도 없는 초기 FBI는 실제로 일선 범죄현장에서 우스꽝스런 존재로 취급받았다. 그런 FBI의 위상이 변하고 J. 에드거 후버가 유명세를 득하는 과정을, <J. 에드거>는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1930년, 후버는 갱스터의 위험성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뉴스 영상에 등장해 “총기를 소지한 범죄자들의 과감한 저항을 더는 묵과할 수 없습니다. 벅스 모란과 알 카포네가 그중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들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그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후버의 연설에 야유를 보내던 관객은 제임스 캐그니가 갱스터로 분한 <공공의 적>의 예고편이 나오자 환호성을 지른다. 이후 FBI가 조직범죄 소탕에 공을 세우면서 모든 어린이들이 장차 FBI 요원을 꿈꾸는 세상이 되었고, 후버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디어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했다. FBI의 범죄 검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잡지, 만화, 광고마다 실렸다. 이번에는 영화가 역으로 반응한다. 갱스터 역할의 대명사였던 캐그니가 (FBI를 뜻하는) 지맨으로 역할을 바꿔 <지멘>에 출연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극장에 나들이 간 후버는 대중의 영웅으로 부상한 자신을 발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 지점에 주목한다. 변한 건 대중이지 후버가 아니다. 적어도 영화에서 후버라는 인물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의 시작도 미미했다. 싸구려 웨스턴에 출연하던 B급 배우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변형된 서부극에 출연하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1970년대를 지나면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액션스타로 발돋움했다. 그 시기의 이스트우드는 후버적인 존재로 보인다. 엠마 골드먼을 추방하고 존 딜린저를 체포하며 킹 목사를 없애지 못해 안달하던 후버와, 범죄자와 적 앞에서 도덕 따위는 내팽개치는 배우 이스트우드의 역할은 다를 게 없다. 여기에 초기 정치 활동까지 더해지면서 이스트우드라고 하면 대부분 보수주의자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이스트우드와 걸작을 쏟아내고 있는 요즘의 이스트우드는 다른 인물일까. 적잖이 혼란스러울 법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스트우드의 정치성에 대해 궁금증을 던지곤 한다. 글쎄, 내가 보기에 <무법자 조시 웨일즈>(1976)와 <그랜 토리노>(2008)를 연출한 사람은 동일한 이스트우드다. 그는 자신을 굳이 표현하자면 자유의지론자라고 했다. 한쪽으로 규정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대중이 판단하기에 이스트우드가 변한 것이지, 이스트우드가 전과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닌 것 같다.
이스트우드가 출연한 영화가 인기작으로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파이어폭스> 같은 영화에 열광하는 친구들을 보며 자랐다. 세월이 흘러 이스트우드가 연출하는 요즘 영화들은 예술영화로 취급받는다. 예전에 비해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관객도 많이 줄었다. 그의 신작 <J. 에드거>가 극장 구경도 못하고 홈비디오로 직행한 사연은 그렇다. 그의 영화를 사랑하던 관객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스트우드가 후버라는 인간 자체를 존경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신념을 따르는 확고부동한 자세는 존경했으리라고 믿는다”라고 썼다. <J. 에드거>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그런 것이다. 아침과 저녁의 표정이 각기 다른 인간이 멀쩡하게 신뢰받는 세상이다. 그런 시대엔 신념이 하찮은 존재로 추락한다. 창피한 일이다. DVD는 간략한 제작과정(13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