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제주만큼 어울리는 곳은 없는데…
<그녀의 연기> 김태용 감독
<뷰티풀>은 ‘아름다움’을 주제로 허안화, 차이밍량, 구창웨이, 김태용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다.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단편 <그녀의 연기>는 공효진과 박희순이 주연을 맡았다. 제주도에 사는 박희순이 병으로 쓰러져 아무런 의식도 없는 아버지에게 가짜 여자친구 공효진을 소개하고, 그녀의 ‘연기’가 이어지면서 벌어지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 제주도의 풍광이 시애틀의 안개를 떠올리게 하고, 말없는 아버지와의 대화가 서로 언어가 다른 현빈과 탕웨이의 대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짧은 러닝타임에서도 김태용 특유의 정서로 가득 차 있다. 또한 김태용 감독은 같은 기간 중국에서 개봉한 <만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현지 기자들로부터 탕웨이와의 작업 등 <만추>에 관한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기도 했다.
-어떻게 떠올린 이야기인가.
=아무 말도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판소리를 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작사가 요구한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제주도만큼 어울리는 곳이 없다고 생각했고, 4일 정도 촬영했다.
-공효진의 판소리 연기가 놀랍다.
=현재 내가 판소리를 소재로 한 시대극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 판소리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이번 영화와도 어울린다는 생각에 그런 설정을 했는데, 불과 1주일 정도 판소리를 배우고 그런 장면을 만들었다. 물론 프로페셔널한 명창의 판소리가 아니지만 그 자체로 전해지는 감흥이 있다. <여고괴담2> 때문인지 공효진은 아직 나를 교생 선생처럼 보는 느낌이 있는데(웃음) 노 개런티로 두 배우 모두 함께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제주도를 평화롭고 아름답게 지켜달라’는 메시지가 최근 강정마을 사태와 겹친다.
=제주도를 찾는 중국 관광객 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알고 있다. <뷰티풀>은 중국에서 온라인으로도 개봉하는데 과연 그들이 영화와 뉴스를 함께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최근 여러 일들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함께 참여한 감독들의 명단이 정말 쟁쟁하다.
=일본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 감독들도 끼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부담도 되고 영광이기도 하다. 영화는 다른 감독님들의 개성이 잘 담긴 것 같다. 온라인으로 개봉하면 에피소드마다 클릭 수가 따로 매겨져 비교가 된다고 들어서 무척 긴장된다. (웃음)
“나는 홍콩을 떠나지 않는다”
<심플 라이프> 허안화 감독 인터뷰
“<보트 피플>(1982)로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와 비교해도 하나도 변한 게 없으세요.” AFA 시상식에 참석한 유덕화가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허안화를 향해 한 말이다. 서극, 담가명 등과 홍콩 뉴웨이브의 핵심인물이었던 허안화는 진중한 사회파 영화부터 장르영화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당대의 홍콩과 호흡해왔다. 특히 지난 몇년간 <천수위의 낮과 밤> <밤과 안개> 등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옛 동료들 중에서 진정한 ‘홍콩 감독’이 누구인가를 명백하게 증명하는 시간들이었다. <심플 라이프>는 유덕화가 그의 집안의 오랜 가정부였던 엽덕한의 마지막 생을, 마치 엄마와 아들처럼 따스하게 보내는 눈물겨운 이야기다. 굴곡 없는 이야기 안에서 한 여자의 회한과 홍콩의 아련한 향수를 담아내는 그 솜씨는 <심플 라이프>를 현재 홍콩 박스오피스 1위로 만들었으며, 엽덕한은 지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최근 작품들은 독립영화적인 방식을 통해 홍콩의 현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전 영화들의 문제의식도 여전하다.
=어느 순간 투자가 힘들어지던 때가 왔다. 그럴 때 모두가 대작을 만들고 중국 본토와의 사업을 모색했지만 난 이곳(홍콩)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에게 변함없는 관심사는 언제나 홍콩이다.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너무 기분 좋은 찬사다. 무엇보다 내 외모가 여전하다. 신발도 몇 켤레 없고 헤어스타일도 그냥 그대로다. 여전히 멋을 못 부린다. (웃음)
-<심플 라이프>는 요양원으로 떠밀려간 홍콩 내의 노년층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급격하게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섣부른 공존이나 화해,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유덕화와 엽덕한에 대해 얘기해달라.
=나도 이미 60대 중반이다. 영화 속 엽덕한의 상황은 이제 곧 나에게 닥칠 문제다. 두 여자가 함께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한편의 영화가 됐다. 그리고 유덕화는 그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성장하는 걸 쭉 봐왔다. 그런데 빛나는 외모의 상업적인 대스타라는 점에 가려져 그가 정말로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걸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있다.
-현재 홍콩영화에 대한 생각은.
=많은 변화에 직면해 있고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다. 내 최근 영화들에서도 중국 본토 이주자 등 그런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그리고 홍콩영화로서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심플 라이프>도 그렇지만 결국 나는 ‘자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