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7년만에 극장에서 만나는 <천국의 전쟁>
2012-04-11
글 : 이영진

<천국의 전쟁>이 드디어 극장에 내걸린다. 국내 수입된 지 7년 만이다. 200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천국의 전쟁>은 그해 말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상영불가 조치나 다름없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아 개봉이 불투명해졌다. 수입사는 그동안 4번의 재심의를 거쳤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해 ‘제한상영가 등급 기준’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정까지 끌어냈다. 하지만 결국 문제의 성기 노출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한 뒤에야 극장 상영이 가능하게 됐다. 감독인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한국에서의 심의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이 영화에서 성적 장면들은 생명에 대한 제 아이디어와 느낌들을 전달하는 근본 요소로 이 장면들이 없다면 전혀 다른 느낌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는데, 모자이크 처리로 인해 감독이 거리를 두고 싶어 했던 ‘포르노그래피적’ 요소가 외려 두드러지게 보일지도 모른다.

줄거리는 간단하고 무미하다. 군 장성의 운전사로 일하는 마르코스(마르코스 헤르난데스)는 아내와 함께 이웃집 아이를 유괴하지만, 돈을 요구하기도 전에 아이가 죽자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한편 어린 시절부터 지켜봤던 장군의 딸 아나에게 범죄 사실을 털어놓은 마르코스는 아나에게 점점 빠져든다. <천국의 전쟁>은 속(俗)으로 성(聖)에 가닿으려는, 육체를 벌하여 정신을 깨우려는 수난극이다. 마르코스가 행하는 첫 번째 아내와의 섹스는 응답없는 기도이고, 아나와 치르는 두 번째 섹스는 몽롱한 체벌처럼 보인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두 번째 섹스장면을 첫 번째 섹스에서 잠깐 보여졌던 기적의 성화가 실제 눈앞에 현현하는 것처럼 찍었는데, 이같은 환각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구원은 일어나지 않으며, 더 큰 죄를 짓고 나서야 마르코스는 겨우 고해할 용기를 얻을 뿐이다. 성모 마리아의 재림에만 목매는 멕시코 민중의 비극을, 마르코스의 얼굴에서 읽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미리 일러두자면, 선정(煽情)적인 것은 따로 있다. 볼품없는 중년 남자와 싱그러운 젊은 여성의 섹스를 지켜보는 것보다 혼돈에 빠진 마르코스의 교란된 지각을 체험할 때가 훨씬 자극적이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물리적 사운드를 변형해서 인물의 심리적 리듬을 전달하는데, 마르코스가 욕망의 정념들에 취해 있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짧은 순간들은 기묘한 쾌락을 선사한다. 살아 있는 시체들을 대면하는 것 같은,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마르코스 헤르난데스는 감독의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공무원 출신의 비전문 배우로,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데뷔작이자 칸영화제 황금카메라 수상작인 <하폰>(2002)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 있다. 카를로스 레이가다스는 <천국의 전쟁> 이후 <침묵의 빛>(2007)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차지했으며, 이후 옴니버스영화 <멕시코 혁명, 10가지 이야기>(2010)를 공동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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