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눈물이 없는 편인데 이렇게 일찍 무너질 줄이야.” 생각보다 빨리 터져버린 눈물보를 원망하며 김영진 영화평론가가 운을 뗐다. 객석에서는 아직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씨네21> 이화정 기자가 4월9일 CGV대학로에서 진행한 이번 시네마톡 상영작은 태준식 감독의 <어머니>. 전태일 열사의 모친인 고(故) 이소선 여사의 마지막 나날을 담은 영화는 ‘노동자의 어머니’에 대한 사회성 짙은 다큐멘터리를 기대했던 관객을 보기 좋게 배반했다. 이화정 기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봤는데 동네 할머니 같은 분이 나와서 나를 이렇게 울릴 줄 몰랐다”고 고백했다. 지인들의 부축에 의지한 채 골목길을 걸어가는 이소선 여사의 뒷모습에서 출발하는 다큐멘터리 <어머니>는, 김영진 평론가가 지적한 대로 “투사로서의 여사와 일상인으로서의 여사의 모습이 일치하는 데서 오는 감동”이 묵직한 영화다.
물론 우리가 그녀의 삶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2년 동안 아들처럼 온 마음을 다해 어머니의 곁을 지켰던 태준식 감독 덕분이다. 이화정 기자가 가장 당연해 보이나 한편으로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왜 이소선 여사를 찍게 됐는가.” 태준식 감독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로 많이 피곤했다. 불안감, 위기감, 스트레스에 시달려서인지 나 자신이 어머니란 존재를 통해 위로받고 싶었고, 그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모두 그 위로를 전달받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영진 평론가는 이소선 여사의 “현재에서 출발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행의 구조를 택한 것이 탁월했다”고 지적했다. “처음에는 쇠약한 육신을 마주하게 했다가 뒤로 가면서 이전의 건강하셨을 때를 보여줌으로써 여사의 삶을 반추하게 한 것이 제대로 감동을 줬다”는 것. 이에 태준식 감독이 “사실 구성을 맡은 친구가 반대를 많이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고 신 단위로 나눠서 찍을 수 없으니까 불안한 면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구조를 통해 어머니가 슬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사는 한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주고 싶어” 뚝심을 발휘했다는 그. 덕분에 우리는 그가 아니었으면 잊혔을 인간 이소선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 뒤에 있는 감독이 카메라 앞의 존재와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소한 영화다.” 김영진 평론가는 <어머니>의 각별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연히 감독에게 “어머니께 이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태준식 감독은 “GV(관객과의 대화)를 돌기 시작한 초반에는 감정 조절이 안돼서 진행자에게 그 질문은 돌려서 하거나 안 했으면 좋겠다고 부탁도 했었는데 이제는 어머니의 매력과 향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며 그 자신과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그가 오도엽 시인과 함께 쓴 편지를 어머니가 읽어주는 것이었다고 설명하는 그의 음성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대신 그 전일까지 기록된 어머니의 옹골찬 목소리로도 그의, 그리고 우리의 각박한 삶을 오랫동안 위로받기에 충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