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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충무로 자본시장의 지각변동 될까?
2012-04-30
글 : 류형진 (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 연구원)
글 : 이영진
<26년>의 크라우드 펀딩을 둘러싼 고민들

<26년>이 크라우드 펀딩 기간을 5월 말까지로 연장한다는 소식이 지난주 트위터를 통해 날아들었다. 2억5천만원이나 되는 후원금을 모았지만, 10억원이라는 목표금액에 미치지 못하여 그 후원금을 모두 되돌려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후원자들의 강력한 지지와 요청을 발판으로 모금 기간을 5월 말까지로 연장하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현실적으로 크라우드 펀딩만으로 영화 1편의 전체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크라우드 펀딩은 제작비 규모가 작은 독립영화에 대해서만, 그것도 제작비의 일부, 또는 부족분을 메우기 위한 갭-파이낸싱 역할만을 수행했다. 지난해 <뉴타운컬쳐파티>와 <Jam 다큐 강정>이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해 개봉까지 완료할 수 있었던 건 제작 주체들이 착취에 가까운 노력 봉사를 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 역시 잊어선 안된다. 이를 일반적인 상업영화에까지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됐다.

<26년>의 크라우드 펀딩은 그런 점에서 너무 놀랍고 새롭지만, 위험하기도 한 시도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26년>의 크라우드 펀딩은 충무로 자본시장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도 있다. 소셜 네트워크가 사람들의 의사소통 방식 및 교류 방식에 관한 기존의 규칙을 다시 쓴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크라우드 펀딩이 장차 기업과 각종 프로젝트의 자금 마련 방식을 재편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는 자원을 확보하고 배분하는 과정이 일부 소수의 회사로 제한되었다면 크라우드 펀딩은 인터넷상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집단 지성과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자율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관객, 새로운 커뮤니티,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상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려도 크다. 크라우드 펀딩이 너무 일찍 시장의 자본과 결합함으로써 애초의 철학과 원칙이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실제로 이 비슷한 상황을 영화계는 2000년대 초 ‘네티즌 펀드’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물론 지금의 크라우드 펀딩은 건전한 목적과 취지를 바탕에 두고 있고, 일부 성공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펀딩 시스템으로 정착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미흡하다. 프로젝트 규모가 클수록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지게 마련이어서, <26년>의 크라우드 펀딩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현재의 법제도가 크라우드 펀딩에 절대 우호적이 아니라는 사실도 마음에 걸린다. 법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공모방식의 투자’로 정의한다면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에 따라 거의 모든 행위가 금지되고, ‘기부’라고 본다면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에 따라 행정안전부의 엄격한 행정 지도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영화 시사회 티켓과 DVD, 포스터 등을 인터넷을 통해 선판매하는 ‘통신판매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일단의 논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크라우드 펀딩의 성격이 모호하기 때문에, 그런 제도들이 영화 제작에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무기로 쓰이지 않을까 걱정도 앞선다. 앞서 <26년>의 제작이 무산된 이유에 대해 영화계에 떠도는 소문이 전혀 근거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으로선 제작사인 청어람이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지만, 이번 기회에 정책 단위에서도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포지티브한 안전장치를 고민해야 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SNS나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해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불특정 다수의 후원을 받아 사업을 진행한 뒤 그 성과를 되돌려주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기부가 아니라 각 후원자에게 그 성과에 대한 보상과 분배가 이루어지는 구조다. 기부라는 이름 대신에 펀딩이라는 단어를 달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물론 그 성과는 금전적인 것보다는 공동의 경험재로 돌아온다. 일반 상품이 아닌 예술창작 활동 등이 크라우드 펀딩의 주 대상이 되는 것도 이와 같은 구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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