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는 왕비(줄리아 로버츠)의 시니컬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눈처럼 하얀 피부, 앵두같이 빨간 입술, 칠흑 같은 머리. 그래서 이름도 ‘유치하게’ 백설인 공주를 왕비는 비아냥거린다. 그러니까 이건 “공주가 아닌 나의 이야기”라며 말이다. 한때는 매일같이 풍악소리가 울려 퍼지던 왕국은 새 왕비를 맞이하면서 쇠락해간다. 왕은 어린 백설공주를 남기고 사라졌고 왕비는 사치스런 생활로 국고를 낭비한다. 한편 발렌시아 왕국의 왕자(아미 해머)는 백설공주가 사는 성에 들른다. 왕비는 왕자와의 결혼을 꿈꾸지만 왕자의 마음은 백설공주에게 가 있다. 이를 알아차린 왕비는 백설공주를 없애라 명한다.
타셈 싱 감독의 <백설공주>는 그림 형제의 동화보다 단순하다. 그 이유는 캐릭터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고통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목격한 뒤 왕국의 재건을 꿈꾸며 검술을 배우는 공주, 미용 관리에만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 왕비, 일곱 난쟁이들에게 험한 꼴 당하기 일쑤인 허우대만 멀쩡한 왕자, 의적이 되려 하는 일곱 난쟁이들.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평면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다. 특히 아쉬운 건 왕비 캐릭터다. 초반의 야심찬 내레이션이 무색하게 왕비의 악행은 그저 철없고 이기적인 허세로 비쳐진다.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신들의 전쟁> 등 전작에서 그랬던 것처럼 타셈 싱은 비주얼리스트로서의 장기를 십분 발휘하는데, 시각적 즐거움만을 즐기기엔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진다. 물론 에이코 이시오카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줄리아 로버츠, 릴리 콜린스는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