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코미디의 시작, 그리고 끝
2012-05-04
글 : 안현진 (LA 통신원)
<새터나잇 나이트 라이브>의 크리에이터 론 마이클스

8년 전 어느 새벽, 나는 ‘미드’의 블랙홀에 진지하게 첫발을 내디뎠다. 입문작은 <24>였다. 잭 바우어와 매분 매초를 함께 숨쉬며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러다 <24> 속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동기화되는 진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를 24시간 동안 깨어 있게 만든 주인공은 잭 바우어가 아니라 <24>라는 TV시리즈를 만든 사람들, 바로 TV크리에이터들이었다. 크리에이터는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TV시리즈 고유의 크레딧인데, TV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말한다. ‘엘리베이터 피칭’이라고 부르는 아이디어 프레젠테이션에서부터 파일럿 에피소드 제작, 캐스팅, 시즌 드라마로의 발탁에 이르기까지 크리에이터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최근 TV시리즈의 오프닝 영상을 보면 “created by”라는 문구가 주목도있게 그려지는 것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지면은 그래서 준비했다. 첫 주자는 <할리우드 리포터>가 “(미국) 코미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며 주간지 한호를 바쳐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낸 바 있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이하 <SNL>)의 크리에이터 론 마이클스다.

캐나다에서 라디오 작가로 경력을 시작한 론 마이클스는 1975년 <NBC>에서 스케치 코미디 형식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SNL>을 만들었고,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무려 37년 동안 미국의 토요일 밤을 지켜왔다. <SNL>의 명성은 허를 찌르는 유머와 날선 풍자가 공존하는 절묘한 균형을 바탕으로 얻어졌다. “코미디는 도발하는 것이다. 절대로 타협해서는 안된다.” 9·11 이후 줄리아니 뉴욕 시장과 구조대원들을 무대로 초대해 “다시 웃겨도 되겠습니까?”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던 순간이나, “내가 죽거든 절대로 바다에 수장하지 말라”는 가짜 유서를 읽는 빈 라덴(프레드 아미센)의 오프닝 스케치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대담함과 그에 걸맞은 위트로 시청자의 뇌리에 남았다. 마이클스와는 37년 지기인 폴 사이먼이 남긴 인평을 보면, 유머에 대한 마이클스의 감각은 가히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웃긴 사람이 아니다. 어떤 긴장된 순간에도 유머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좀 지겹긴 하지만 <SNL>과 함께 거의 40년을 보낸 이 거물이 배출한 이름들을 읊어보자. 우리가 알 만한 코미디언들로는 체비 체이스, 존 벨루시, 빌 머레이, 마이크 마이어스, 애덤 샌들러, 윌 페렐, 티나 페이, 에이미 폴러, 크리스텐 위그, 프레드 아미센 등이 있고, 카메라 뒤로 영역을 확장하면 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질 것이다. 현재 방영 중인 TV시리즈 중 <SNL> 출신들이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30록>(티나 페이), <포틀랜디아>(프레드 아미센), <업 올 나이트>(에밀리 스파이비) 세편 모두에 론 마이클스가 제작자로 참여한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새 칼럼의 첫 리본을 시리즈 드라마가 아닌 코미디 프로그램의 크리에이터로 끊는 것에 대해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다. 게다가 4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66살의 노장을 단 한 페이지에서 소화하는 것도 무리였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하루에 6시간은 TV를 보는 사람으로서 2011~12년 미국 TV를 점령한 장르는 코미디이며, 론 마이클스는 단연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 나의 변론이다. 내친 김에 굵직한 이름부터 소개하고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마도 최초이자 마지막이 되겠지만, 다음 칼럼의 주인공을 예고한다. <빅뱅이론> <두 남자와 1/2>의 크리에이터인 척 로리다. 역시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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