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출범한 영화사 LJ필름은 <수취인 불명>에 이은 두번째 작품 <나쁜 남자>가 7억원짜리 저예산 영화임에도 지난 20일까지 개봉 열흘 만에 전국관객 38만명을 동원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그보다 이 영화사에 기대를 갖게 하는 건 앞으로 예정돼 있는 라인업이다. 이미 LJ필름에서 두 편을 내놓은 김기덕 감독 외에 <해피엔드>의 정지우, <파이란>의 송해성, <여고괴담2>의 민규동·김태용, <인터뷰>의 변혁 등 제작자들이 잔뜩 눈독을 들이는 감독들의 차기작이 줄서서 대기하고 있다. 감독 이름만 놓고 보면 LJ필름은 단연 충무로 최고의 다크호스이다.
이 영화사 이승재(38) 대표가 직접 전하는 차기작들의 개요는 이렇다. 정지우의 <두사람이다>는 강경옥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고, 장르로 치면 미스테리 멜로에 가깝다. 한 가문이 선대의 저주를 받아 세대마다 가족끼리 서로 죽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부모가 자식을 죽일지, 동생이 형을 죽일지 아무도 모르며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불가능하다. 이 가문의 두 자매가 한 남자를 만난다.
민규동의 <솔롱고스>의 컨셉은 남자의 `제2의 사춘기'이다. 몽골말 `솔롱고스`는 `무지개 동쪽에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한국인을 지칭한다. 일상에서 도피하려는 30대 유부남이 몽골에서 만난 여자의 청순함에 반한다. 둘의 만남이 몽골의 이국적 풍경, 천민자본주의적인 사회상과 마주하게 된다.변혁 감독은 워낙 지적이어서 소재는 소프트한 걸 택하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호출`, `사진관 살인사건` 등 김영하의 단편소설 세편을 묶어 영화로 만드는 걸 변 감독과 의논중이다.
송해성 감독은 지금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데 내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것 외에 이인화가 쓰고 있는 광산 상인들의 일대기 <덕대>의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었다. 소설이 5월에 끝나면 그걸 송 감독에게 맡겼으면 한다.이씨는 영화사를 차리기 전 프러듀서 시절에 김기덕과 <파란대문>을, 변혁과 <인터뷰>를 함께 만들었다. 민규동·김태용과는, 그들이 `씨네2000'에서 <여고괴담2>를 찍을 때 같은 영화사에서 <인터뷰>를 만들었던 인연이 있다. 송해성 감독은 LJ필름의 안상훈 프러듀서와 함께 <카라>와 <파이란>을 찍었다.
이씨는 이런 인연들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을 중심으로 일하고 싶다. 감독들과 80% 놀다보면 20%의 창의성이 생긴다. 회의하는 것보다 함께 여행하고 술먹는 걸 중시한다. <솔롱고스>도 이인화씨의 소설 <시인의 별>을 영화로 만들까 하고 이씨, 민 감독과 함께 몽골에 갔다가 이와 별도로 민 감독이 잡아낸 소재였다. 우선은 감독들과 한편씩 계약하고 있지만 그 다음 영화도 함께 갈 생각이다. 그러다보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나올 거라고 믿는다.”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이런 태도 때문에 LJ필름은 감독들 사이에서, 혹은 데뷔를 준비하는 영상원 학생들 사이에서 함께 일하기에 가장 좋은 영화사로 꼽힌다. 이 대표와 김기덕 감독, 배우 조재현씨의 각별한 관계도 이를 반증한다. 이 대표는 조씨의 매니저에 가까울 정도로 그의 모든 출연작에 대해 함께 상의한다. 조씨와 함께 만든 영화도 4편에 이른다. 김 감독과는 <파란 대문>에서 시작한 인연이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를 거쳐 오는 5월 촬영에 들어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까지 이어진다. “<봄…>은 한 스님이 동자승을 거쳐, 청년기에 절을 뛰쳐나와 사랑도 하고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갔다가 다시 절에 들어가 해탈하기까지를 4계절의 변화에 맞춰 담아내는 영화다. 계절별로 2주씩 찍으려 하는데, 시간이 많이 남다 보니 성질 급한 김 감독은 그 사이에 영화 한편을 더 만들겠다고 한다.”
고려대 철학과를 나온 이씨는 골수 운동권 출신으로 졸업 뒤 운동단체를 만들었다가 8개월 복역했다. 출소한 뒤 출판사를 거쳐 90년대 초반 영화계에 뛰어들어 이제 막 전성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