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라(카리나 하자드)는 종신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갑작스러운 사면으로 출소한다. 사면의 조건은 눈이 보이지 않는 신부 야곱(헤이키 노우시아이넨)의 집에 머무르면서 신부에게 온 편지를 읽어주는 것이다. 레일라는 청렴하게 살아가는 야곱 신부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편지에 답장을 하고 기도를 하는 그의 사명이 헛된 짓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더이상 야곱 신부에게 편지가 오지 않는다. 실의에 빠진 신부를 위해 레일라는 이제 가짜 사연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야곱 신부의 편지>는 단출한 영화다. 여기에는 야곱 신부, 레일라, 그리고 편지를 전해주는 우체부, 딱 3명의 인물만이 존재한다. 왜 야곱 신부는 레일라의 사면을 원했던 걸까? 레일라는 어떤 이유로 복역을 하게 된 걸까? 클라우스 해로 감독은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을 마지막으로 미룬다. 대신 그는 분노로 가득 차 인생을 포기하려는 인간과 신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왔으나 회의에 빠진 인간이 서로의 삶을 구원해내는 과정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사실 믿음에 대한 회의와 구원이라는 소재는 진부한 게 사실이다. 클라우스 해로는 진부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극도로 간결한 내러티브와 두 주연배우의 힘있는 연기로 극복해낸다. 특히 배우, 저널리스트, 작가로 일하는 핀란드 여배우 카리나 하자드는 내면의 상처를 억지로 짓누르고 살아가는 무뚝뚝한 시골 여인의 캐릭터에 진정한 피와 숨을 담아낸다.
<야곱 신부의 편지>는 상영시간이 겨우 74분이다. 가히 북구적이라 할 만한 이 경제적 상영시간은 점점 길어지는 요즘 상업영화들에 대한 어떤 치유제처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