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거지, 좋으면서도 싫고 싫으면서도 좋은 건 뭘까요? 솔직히 잘생긴 외모는 절대 아닌데 일주일 이상 그 사람을 못 보면 가슴이 답답해요. 그렇다고 성격이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초면에도 막말에 사생활이며 재산이며 예의 없는 질문은 어찌나 많이 하는지. 그런데 그 사람,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진 거고 예전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게 심한 말도 정말 많이 했어요. 아마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절대 용서하지 못했겠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사람만은 버리기가 힘드네요. 머리로는 나쁜 놈이라 생각하면서도 다음 순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기울여 웃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해요. 제가 너무 개념이 없는 걸까요?” -염창동에서 최모양
그렇다. 김구라 얘기다. 정확히 말하면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이하 <라디오 스타>)의 김구라 말이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는 안된다. 경찰의 집창촌 단속에 항의하기 위해 전세버스를 타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러 간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창녀’라 비하한 것도, ‘정신대’에 비유한 것도 곱씹을수록 끔찍한 말이다. 아무리 10년이 지났다 해도, 아무리 “먹고살 길 없었던” 시절이라 해도, 아무리 수위가 높은 인터넷 방송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수위 높은 농담이나 신랄한 풍자가 아닌 그저 폭력이었다. 그것도 농담의 탈을 쓴. 과거 이효리, 하리수에 대한 비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불거지자 김구라는 구구한 변명 대신 꽤 성의있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공중파 방송에 다시 얼굴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에 예전에 했던 생각 없는 말들에 여러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으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오자까지 똑같이 베껴놓고도 표절 논문이 아니라고 버티거나, 제수 성추행 의혹에 “남녀간의 일은 팩트는 하나인데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다”라고 우기는 국회의원들이 대중의 속을 뒤집어놓는 와중에 잘못을 잘못이라 인정한 것만으로도 김구라의 처세는 참신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 자숙을 선언했다. 이 얼마나 깔끔하고 효과적인 사태 진압인가.
문제는 그가 하차하게 된 방송 프로그램에 <라디오 스타>가 있다는 점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홍보, 안 궁금하고 안 물어본 그들만의 시시콜콜한 사랑 이야기, 자신의 성공에 도취된 스타의 성공 이야기 대신 치부, 논란, 허점을 귀신 같이 짚어내는 <라디오 스타>는 게스트와 상관없이 유일하게 대체 불가한 성격을 띤 토크쇼였다. 그리고 그 무례하지만 솔직한, 속물적이지만 그 사실을 숨기지 않는 토크의 중심에는 김구라가 있었다. 대체 김구라가 아니라면 누가 아이돌에게 열애설의 진위나 아버지의 직업을 그토록 자연스레 캐물을 수 있을 것이며, 중년 연예인들과 행사 수입이며 아이들 학비를 주제로 수다를 떨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김구라의 녹화분이 한주씩 줄어들다 드디어 바닥을 보이는 요즘, 수요일 밤 <라디오 스타>와 함께 목요일과 금요일을 버틸 힘을 얻었던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몹시 마음이 복잡하다. 트랜스젠더, 성매매 여성을 포함해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 발언에 분노하는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도 역시 마음이 불편하다. 과거의 잘못, 폭력, 매력, 재미가 한꺼번에 끓고 있는 도가니에서 무엇을 건져내고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게다가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이 애증 섞인 딜레마의 주인공이 하필 ‘동현이 아빠’ 김구라라니, 이게 사는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