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뜨거운 물 붓지 마아∼. 발에서 때밀려욧!” 코에서 울리는 특유의 오묘한 화음으로 엄정화가 제작부에게 말한다. 별로 안 뜨거우니, 걱정 말라고 하자 발을 쑤욱 ‘다라이’에 담근 그녀가 옷가지들을 신나게 밟아대기 시작한다. “자, 슛 들어갑니다” 하는 사인이 나왔지만, 꿀렁꿀렁 촉감이 좋은지 아예 물장난을 칠 기세다.
유하 감독의 재기작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막바지 촬영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산동네 금호동 언저리다. 주머니보단 마음이 넉넉한 부부들이 첫 보금자리로 삼기에 적당할 듯한 옥탑방에서 사이좋게 빨래를 밟고 있는 준영(감우성)과 연희(엄정화)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샘이 날 법도 한데 사정은 간단치 않다.
(1) “맛 좀 봐라, 얍!” 우성이 비누거품을 옷에 묻히자, 연희는 싫지 않다는 듯 까르르거리며 피하는 시늉을 한다. 닭살 커플이라고?
(2) 소품 담당들이 샴푸인지 물비누인지 모를 액체를 붓고 부글부글 거품을 만들고 있다.
(3) 이 영화를 통해 ‘입봉’하는 김영호 촬영감독은 <무사>에서 2조 카메라를 책임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혼은, 미친짓이다>는 감독과 남녀 주연 모두에게 “처음 같은 느낌”의 영화다.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실패를 맛봐야 했던 유하(4) 감독이나, “아직도 <마누라 죽이기>는 못 봤어요”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부담스런 기억을 갖고 있는 엄정화(5)나, 방송을 떠나 영화에 첫발을 딛는 감우성(6)이나 모두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영화에 임하고 있다”며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