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의 architecture+]
[architecture+] 왜 아저씨 밴드들은 록 음악을 할까?
2012-05-25
글 : 황두진 (건축가)
<즐거운 인생> <브라보 마이 라이프>
<즐거운 인생>

<즐거운 인생>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둘 다 아저씨 밴드에 대한 영화들이다. 기본적인 골격도 비슷하다. 삶에 지친 한 무리의 아저씨들이 있다. 몸과 마음이 다 초라하고 세상에 자기 편이라고는 없는 듯하다. 이때 음악이 구원처럼 찾아온다. 밴드를 결성하고 음악을 하면서 자기를, 그리고 친구와 동료를 다시 발견한다…. 결국 중년의 위기를 음악을 통해 헤쳐나간다는 것인데, 본인 성향에 따라 음악이 아닌 다른 것들, 예를 들어 운동이나 등산 등이 등장할 수도 있다.

아저씨들은 뭐든지 살살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운동은 그냥 운동이 아니라 마라톤 완주가 되고, 등산은 적어도 히말라야 트레킹 정도가 되며, 음악은 단연코 록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장비에 대한 집착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청년 시절보다 보강된 경제력과 사회생활을 통해 단련된 정보수집 능력을 통해 ‘요즘 이 정도는 다 쓴다’는 고가의 장비들을 열심히 찾아 모은다. 그래서 어지간한 프로들보다 장비가 좋은 경우도 많다. 역시 남자는 장비!

아저씨 밴드에게 록 이외의 음악은 합목적적이지 않다. 음악을 통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젊음과 삶의 열정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서 록은 불문율이다. 그래서 드럼과 베이스, 이펙터와 연결된 전자기타는 필수품이다. 거기에 색소폰도 종종 추가된다. 쿵쾅쿵쾅, 둥둥둥둥, 끼익삐익, 바바바방, 신나기 짝이 없다.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래, 나 아직 안 죽었어!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내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 사랑, 연인, 그리움, 이별….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아름다운 추억이다. 당장 내가 지금 살아가며 겪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 노래하는가? 그리고 음악이 꼭 비트가 강하고 저항정신으로 가득한 (혹은 그렇다고 하는) 록이어야만 할까?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는 순간, 갑자기 너무나도 넓고 풍성한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여러 장르의 음악들, 그리고 갖가지 종류의 악기들. 세상은 넓고 음악의 세계는 다양하다. 자기에게 맞는 것을 고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넘을 수 있는 산이 있다. 서툰 솜씨로 악기를 다루고 갈라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용기가 있다면 엉성하나마 내 이야기를 담은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음악을 통해 나를 증명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냥 음악을 즐기고 이를 통해 나의 감성과 생각을 솔직히 드러낸다면? 정말 ‘아저씨다운 음악을 한다’는 것은 혹시 이런 것이 아닐까.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