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사베츠 회고전이 열리는 중이다. 그는 요즘 시네필에게 감독으로 더 알려져 있다. 내게 카사베츠는 배우로 낯익은 인물이었다. 감독으로 그를 인식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카사베츠와 장르영화 배우로서 카사베츠의 간극은 얼마나 클까.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에서 재미있는 페이지를 찾았다. 카사베츠의 1968년작 <얼굴들>에 이어 소개되는 영화는 로만 폴란스키의 <악마의 씨>다. 작가 카사베츠에 대한 찬사를 읽자마자 다음 페이지에서 악마에 홀린 얼굴의 그를 보는 기분은 묘하다. 사실 카사베츠는 배우라는 직업에 마냥 만족했던 것 같지는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할리우드영화에서 배우에게 주어진 자유는 거의 없다고 여겼다. 자기 영화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억지로 영화에 출연해야 했으며, 언젠가 배우에게 남겨진 유일한 자유의 땅은 무대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영화에서 할리우드 배우로서의 경험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오프닝 나이트>에 서린 <악마의 씨>의 그림자가 그런 경우다.
<오프닝 나이트>의 머틀은 약간 정신이 나간 카사베츠의 인물들 가운데 정도가 심한 역이다. 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그녀는 환영에 시달린다. 뉴욕 프리미어가 다가오면서 상태가 악화되자, 주변인들은 그녀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한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점점 광기에 빠지는 머틀은 <악마의 씨>에서 악마주의자들로부터 아기를 지키려 애쓰다 정신을 잃어가는 로즈마리와 닮았다. <오프닝 나이트>의 중반부에는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장면 몇 가지가 이어져 있다. 하나, 의심스러운 눈빛의 심령술사가 거북한 표정의 머틀에게 강령회를 제안한다. 둘, 호텔로 돌아온 머틀을 유령이 공격한다. 소름 돋는 장면이다. 여기까지는 영화의 전개상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다음의 결정적인 신에서 <오프닝 나이트>와 <악마의 씨>의 만남은 절정을 맞는다. <악마의 씨>를 촬영한 윌리엄 프레이커와 폴란스키는 각별한 시도를 통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바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던 카메라가 인물 신체의 일부분과 문이 만나는 지점에서 멈춘다. 관객의 시선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반응했고, 당시 관객이 벽 너머를 바라보고자 고개를 틀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카사베츠와 (오랜 지기인) 촬영감독 알 루빈은 <악마의 씨>의 시도를 뒤집는다. 공포에 떠는 머틀이 아래층 작가의 방으로 내려간다.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갈 동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던 카메라는 작가의 모습이 지워지는 지점에서 멈춘다.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벽 너머를 볼 수 있게끔 고개를 기울여야 했을까? 카사베츠는 방 안쪽에 거울을 설치해 관객이 작가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해놓았다. 그리고 영화는 사실주의라는 본래 자리로 복귀한다. 얼마 전 이 영화를 다시 보다 발견한 놀라움이다. 카사베츠는 배우로 출연한 가장 유명한 할리우드영화에 농담을 걸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악마의 씨>에 드리운 비극적인 역사를 그렇게나마 달래고 싶었던 걸까. 알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살짝 웃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