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전쟁영화 <아르마딜로>의 주인공을… 헉, 진짜 아르마딜로가 나왔네요.
=안녕하세요, 아르마딜로입니다. 저는 빈치류의 피갑목(被甲目)동물의 총칭이고요. 거북의 등딱지와 비슷한 띠모양의 딱지가 몸을 덮고 있습니다. 먹는 건 곤충이나 무척추동물, 동물의 사체예요. 주로 북아메리카 남부지방에서부터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 지방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게 아니고요. <아르마딜로>의 주인공이 아르마딜로는 아니거든요. 영화 속 무대가 되는 아프가니스탄 최전방 기지의 이름이 아르마딜로예요. 근데 웬 아닌 밤중에 진짜 아르마딜로….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도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지원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 파병군인 출신입니다. 제가 영화 속에서는 안 보인다고요? 카메라 감독도 덴마크 사람이라 키가 너무 커서 발밑의 저는 화면에 못 담았나봅니다.
-뭔 소린지 감이 안 오네요. 일단 그 파충류 특유의 기다란 혀 좀 제대로 굴려보세요.
=파충류라니요. 아르마딜로는 포유류입니다. 여하튼 저는 주인인 덴마크 청년을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으로 갔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반려동물이니 전쟁터도 함께 가야 한다더군요.
-사랑하는 반려동물이면 덴마크의 친구에게 맡기고 왔었어야죠.
=괜찮아요. 어차피 덴마크에 있어봐야 날씨도 축축하고, 또 사실 이 친구가 인간 친구가 없거든요. 그래서 맡길 곳도 없었을 거예요. 기껏해야 티볼리 공원 어귀에서 헤매다가 경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겠죠.
-덴마크는 동물복지가 워낙 잘된 국가라 그럴 일은 없었을 거예요.
=여하튼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주인의 상관이 그러더군요.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좀 정신없긴 하지만 흥미롭더군요. 덴마크는 하도 조용해서 삶의 의지가 사라질 정도였는데 아프가니스탄은 고향 같더라고요. 기자님도 알다시피 제가 원래 살던 정글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전쟁터였거든요. 정글에서 정글로 간 셈이죠.
-무시무시하네요. 그래서 지금은 주인과 함께 덴마크로 돌아가셨나요.
=아뇨. 제 주인은 덴마크보다는 아프가니스탄이 훨씬 재밌대요. 영화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이 친구들이 부상당한 적도 걍 쏴버리고 시체 헤집어 전리품도 챙기는 재미에 적잖게 중독이 된 터라. 전 아예 덴마크로 가지 않고 아프가니스탄에 남았습니다.
-대체 왜요?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주로 먹는 건 곤충이나 무척추동물, 혹은 동물의 사체라고요. 동물의 사체 말입니다. 매주 총격과 폭탄테러가 일어나니 제가 먹을 별미도 끊이질 않네요. 요즘 배불리 먹고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