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작(김강우)은 윤 회장(백윤식)과 백금옥(윤여정)의 수족이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었지만, 궂은일 하는 하녀 에바(마오이 테일러)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 이 집에서 영작을 유일하게 사람 취급하는 것은 윤 회장 부부의 딸인 나미(김효진)다. 에바가 윤 회장의 정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백금옥은 분을 참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영작의 몸을 탐하지만 영작은 이를 거부하지 못한다. 얼마 뒤, 윤 회장은 에바와 함께 한국을 떠나겠다고 가족들에게 폭탄선언을 하고 이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애욕의 사건들이 꼬리를 문다.
임상수 감독에게 성역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곧바로 무너져 내리는 모래성이다. 견고해서가 아니라 부실하기 때문에 접근하면 안되는 성역이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바람난 가족>의 중산층 가족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 떠올려보자. <그때 그사람들>의 절대권력들은 양아치 조폭들의 어수룩한 행태를 반복한다. <하녀>의 예의 바른 부잣집 도련님이 저지르는 패악은 그저 실수일 뿐인가. 임상수 감독은 일단 환부를 째고 본다. 쑤시고 본다. 완치가 불가능하니 그냥 덮어두자는 건 그에 따르면 비겁한 위선이자 게으른 대처다.
“돈을 끊기가 무서웠거든.” 돈 앞에서 굴복한 이가 윤 회장뿐인가. 백금옥의 사랑과, 윤철(온주완)의 자부심과, 로버트(달시 파켓)의 상식 역시 무지와 기만의 제스처 아닐까. 하지만 파국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했던 임상수 감독의 전작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으리으리한 저택은 이내 무시무시한 비명에 수장되지만, <돈의 맛>은 모욕의 바다에서 탈출할 길 역시 슬쩍 보여준다. 백윤식, 윤여정 외에도 권병길, 김응수, 황정민 등 임상수 감독 영화의 단골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이중 백윤식의 연기는 단연 돋보이는데, <범죄의 재구성> <그때 그사람들>과 같은 대표작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