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문민정부라는 화려한 외피를 쓰고 김영삼이 정권을 잡은 직후였고, 대학은 조용했고, 학계에서는 ‘포스트’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였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90%에 육박했고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노동절 행진을 했다. 스무살이었지만 그 무엇에도 강렬하게 매료되지 않았고 무언지 모르게 나는 잔뜩 억울해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내 손에 들어온 게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이었다. 그는 당시 서사성의 후퇴와 리얼리즘의 위기가 운위되던 가운데 신경숙과 함께 평자들의 주목을 받던 신세대 작가였다. 그 작품집의 전언을 압축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먼 것’이 있어야 산다는 것이다. ‘먼 것’. 한밤중 자식들이 줄줄이 딸린 가장을 홀연히 가출하게 만들고, 명민한 여인을 어느 순간 머리 깎게 만들고, 익숙했던 그 모든 일상적인 질서와 문득 불화하게 만드는 그 ‘먼 것’. 그것들은 작품집 속에서 말발굽 소리로, ‘소’로, 풀피리 소리로, 은어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드러나 있었다.
나는, 세상에 대해 단단히 싸울 채비를 마치고 상경한 고집불통 스무살짜리 나로서는, 이제 막 호흡을 고르고 링에 올라보니 이미 싸움은 끝난 것 같아 억울해하고 있던 나로서는 조금은 멍한 독서이긴 했다. ‘이게 다 뭐야. 환상으로 도망가버리자 이 말인가’…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작품집 전체를 휘감고 있는 푸른빛, 그리고 ‘저쪽’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오래 남아 있었다.
또 그 무렵, 내가 만난 한편의 영화가 뤽 베송 감독의 <그랑 블루>(Le Grand Bleu)다. 또 한편의 ‘먼 것’에 관한 영화. 한 잠수부가 있다. 다른 보조도구 없이 가능한 한 바다 깊은 곳으로 잠수해가는 한계의 사나이. 영화 속에서는 잠수의 일인자를 가리는 잠수대회가 영화의 주요 틀로 등장하고, 실상 그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다른 잠수부와의 기록경쟁 과정도 세세히 다뤄지지만 어쩌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경쟁에서 승리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드넓은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에게 바다는 자궁이자 자유이자 오히려 더 편안한 현실이다.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곳이자, 가보고 싶은 곳이자, 원래 더 익숙한 곳이 바로 그 푸르름의 세계다. 나를 매료시킨 장면 세 가지.
하나.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은 그에게 중요한 사랑 고백을 하려고 한다. 분위기를 감지한 주인공은 바다로 뛰어든다. 현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너무 벅찬 이야기를 수용하거나 참아내거나 이겨내야 할 때, 그는 그곳으로 돌아가 그것을 수용하거나 참아내거나 이겨내는 것이다. 여인이 함께 뛰어들어, 사랑한다고, 아이를 가졌다고, 당신이 전부라고 외치고 토로하는 동안 그는 끝없이 자맥질을 하고 또 한다.
둘.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라이벌과의 신경전과 기록경신이 이어지던 어느날, 그는 잠을 자고 있던 한순간 침실 천장이 수면으로 변하는 환상을 경험한다. 바다가 그를 불렀던 것. 그때 그 푸르름은 더이상 자유가 아니라 두려운 매혹으로, 죽음으로 다가왔다. 마치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블루>에서 가족들을 잃고 힘겹게 자유에 낯을 익혀가는 주인공 여인이 어느날 짙푸른 수영장에서 홀로 수영을 하다가 호흡을 고르며 그 푸른 수면을 바라보던 환희와 낯섦과 공포과 고독으로 버무려진 그 얼굴 표정처럼.
셋. 주인공은 마침내 어느 새벽, 무언가에 홀린 듯, 마음을 굳힌 듯 홀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바다로 향한다. 마침내 더 깊이, 기록도 성취도 없는 그곳으로 아예 돌아가버리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때, 그를 따라나선 여인은 울부짖는다. “I’m here. I’m real, my love.” 내가 여기에 있다고, 내가 여기에 이렇게 실재한다고. …현실과 ‘먼 것’ 사이의 아득한 아픔.
누구에게나 ‘먼 것’이 있다. 멀리 있어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 나는 지금도 출근길에 뜻없이 호흡을 고르거나, 깊은 밤 총총히 불 밝힌 먼 아파트 단지들을 멍한 눈으로 굽어볼 때마다 <그랑 블루>의 그 푸른빛을 떠올리곤 한다. 참, 며칠 전 신문기사에서는 그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잠수부(이제는 노년이 된)의 의문의 자살소식을 짤막하게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