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x&talk]
[전준호, 문경원]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검열의 작업이다
2012-06-15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뉴스 프롬 노웨어’ 프로젝트로 <카셀 도큐멘타> 참가하는 아티스트 전준호, 문경원

현대 미술작품 앞에서 자존감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미술계에서 극찬받은 작품이지만 막상 내게는 전율이 오지 않을 때, 그건 나의 무지몽매함 때문일까 주눅이 들곤 했다. 그러나 미디어 아티스트 전준호(사진 왼쪽)와 문경원은 예술은 학습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꼬마전구를 볼 때 누구나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처럼. 두 작가의 ‘뉴스 프롬 노웨어’ 프로젝트는 예술과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고민으로부터 출발했다. 전준호와 문경원은 2년 전부터 각 분야의 경지에 오른 전세계의 고수들을 찾아 예술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 답을 반영해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린 단편영화 <세상의 저편>과 설치물 작업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6월9일부터 9월16일까지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전시회인 <카셀 도큐멘타>에서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세상의 저편>의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사 봄 오정완 대표의 소개로, 출국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인 전준호, 문경원 작가를 만났다.

-<세상의 저편> 재밌게 봤다.
=전준호_칭찬 말고, 정말 어땠나. 솔직하게 말해달라.

-정말 솔직하게, 이게 첫 연출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가 잘 나왔다. 듀얼 스크린으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된다는 아이디어도 좋았고, 무엇보다 프로덕션 디자인과 촬영의 감각이 좋더라.
=전준호_그렇나. (영화사 봄) 오정완 이사님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할 프로젝트였다.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가 <세상의 저편>의 프로듀서를 맡은 건 어떤 인연에서인가.
=전준호_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이 내 후배다. 현진이가 단편영화 작업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원씨와 함께 이번 영화를 구상하며 현진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랬더니 “이분을 통하면 형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며 오 이사님을 추천해주더라. 삼고초려해 오 이사님을 모셨다.

-<세상의 저편>의 공동감독을 맡았다. 두 사람은 원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나.
=전준호_서로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정작 친분을 쌓게 된 건 2007년 타이베이 비엔날레에 함께 참석하면서부터다. 당시 한국 작가는 나와 경원씨가 초청받았는데, 주최쪽에서 비행기 좌석을 나란히 배정해줬더라. 옆에 앉아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지. 그런데 얘기를 해보니 잘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미술계 사람들이 서로의 작업에 대해 잘 안 물어본다. 그걸 실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시회에 참석하거나 작가들 모임이 있는 날에도 서로 자극이 될 만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런 점에 대한 갈증이 좀 있었는데, 경원씨와 나는 각자의 작업에 대해 스스럼없이 비평해주는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그건 진짜 후지더라” 하는 얘기도 서슴없이 해줄 만큼. (웃음) 비엔날레 이후 친분을 쌓으며 언제 기회가 되면 같이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그게 <세상의 저편>의 시작이었다.
문경원_비엔날레 이후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점도 이 영화의 구상에 한몫한 것 같다. 선생님은 부산에 있고, 난 서울에 있다 보니 메신저로 서로의 시각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많았다. 우리가 비슷한 또래다. 선생님이 나보다 한살 더 많은데, 둘 다 예술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10여년간 작업을 이어왔고 지쳐갈 무렵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라며 메신저로 생각을 주거니받거니하는데, 이게 너무 재밌는 거다. 그래서 우리의 고민을 시나리오화해서 내가 여자쪽 보이스를 만들고, 선생님이 남자쪽 목소리를 만들어 크리티컬한 장소에서 상영할 수 있는 영상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세상의 저편>

-이 영화는 오늘날 현대 미술에 대한 두 사람의 위기의식으로부터 시작한 프로젝트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봤나.
=전준호_경원씨와 동의했던 부분이 있다. 오늘날 현대 미술은 ‘대중과의 소통’, ‘대중과의 간극 줄이기’를 끊임없이 말한다. 그런데 내부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현대 미술이 진정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 현대 미술은 너무나도 난해한 코드로, 그들만의 리그로 돌아가고 있다. 몇몇의 미술 정치 시스템에 의해 작품의 가치가 판가름나고, 아름다움과 감동이란 게 지금의 현대 미술에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대 미술의 첨병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정말로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검열을 해보자는 취지로 <세상의 저편>을 만들게 됐다. 예술은 무엇인가,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예술에 기대하는 건 무엇인가를 논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형식에 대해 질문하면, 두 사람의 작품의 기반인 미디어아트와 설치미술이 아닌 영화를 굳이 선택한 이유가 있나.
=전준호_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작품을 영화라고 부르기엔 좀 낯간지럽다. (웃음) 만들어보니 영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 영상물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 아무쪼록 영화를 선택한 건 영화가 현존하는 매체 중 가장 대중에 친숙해서였다. 더불어 우리의 작업이 출발점이 모호하고 답을 구하고자 하는 여행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질문을 던지고 답이 무엇일까 끌어내는 과정에 가장 적합한 매체가 영화라고 봤다.

-<세상의 저편>은 종말 이후 인류의 이야기다. 가까운 미래의 남자, 먼 미래의 여자의 이야기가 듀얼 스크린으로 ‘종말’을 배경으로 한 건 어떤 이유에서인가.
=전준호_인간이 유한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더더욱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할 거라고 생각해서다. 영화를 보면 두 남녀는 시점은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남자는 건물 밖에서 종말의 징후가 느껴지는 오브제를 가져와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고, 여자도 외부에서 지난 인류의 오염된 샘플을 가져와 분류한다. 두 사람 모두 채집과 수집의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 겹친다.
문경원_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러려면 종말이라는 끝을 전제하지 않으면 안되겠더라. 고민했던 점은 종말이라는 시점 안에서의 예술작품, 그리고 형태적인 무엇을 제시하기보다 종말을 맞이한 사람들의 태도나 행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겠다는 거였다.

-남자와 여자의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
=전준호_남자는 우직하고 아주 고지식하고,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설정했다. 세상이 내일 망하더라도 난 세상과 상관없이 내 일을 하리라는 외골수적인 캐릭터를 원했다. 여자는 먼 미래에 살기 때문에 이전의 예술과 문명에 대한 가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신의 궁금함을 대사로 표현하는 거다.

<세상의 저편>

-이정재, 임수정이 남자와 여자로 나와 깜짝 놀랐다. 초호화 캐스팅이다.
=전준호_두분 모두 기존에 하던 작업이 있던 상황에서도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해줬다. 수정씨는 몸담고 있던 상업영화계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하더라. 그리고 이정재씨는 워낙 미술을 좋아한다. 미술계에서도 굉장히 테이스트가 높은 컬렉터 중 한명이다.
문경원_운이 좋았던 건 시나리오상으로 우리가 원하는 배우 이미지와 두분이 매우 잘 어울렸다는 거다. 수정씨는 우리 영화의 아트 디렉터를 맡은 정구호 선생님이 추천해주셨다. 여성성과 남성성이 묘하게 겹치는 신인류의 느낌을 살려줄 배우를 찾고 있었는데, 수정씨가 그 이미지에 정말 잘 어울렸다.
전준호_정재씨는 오정완 이사님이 연결해주셨는데, 작업하기가 너무 편했다. 미술에 대한 기존의 이해가 없으면 어려웠을 역할인데, 뭔가를 주문하면 바로 이해해주니까. “에릭 피슬 같은 그림을 만들 거예요” 하면 “아, 좋아요” 하고, “렘브란트처럼 해주세요” 하면 “네” 이러니까. 그런 점에서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남자와 여자의 공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오브제가 ‘꼬마전구’다. 이 오브제가 가까운 미래와 먼 미래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전준호_두 사람을 묶어주는 오브제로 어떤 것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촬영에 들어가기 직전에 꼬마전구로 결정했다. 언어, 문화, 환경을 떠나 꼬마전구를 보면 누구나 예쁘다고 느끼잖나. 반짝반짝. 다소 낯간지럽지만 꼬마전구로부터 인간이 느끼는 향수가 기본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단초라고 생각했다.
문경원_이 영화를 만들며 예술의 본질이 뭘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모든 사람들이 설명하거나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느끼는 공통적인 아름다움이나 미의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꼬마전구가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그런 아름다움을 자각하고 느끼는 순간이라고 봤다.
전준호_<세상의 저편>이 포함되어 있는 ‘뉴스 프롬 노웨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화여대의 최재천 석좌교수님을 만났다. 이분이 침팬지 연구를 하다가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고 하시더라. 침팬지가 어느 날, 망고와 바나나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더라. 침팬지는 노을이 지는 걸 20분 동안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보더니 해가 다 지자 바나나도 망고도 잊어버린 채 빈손으로 털털털 가더란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신의 인생을 유추하고 존재에 대해 생각하는 건, 동물이나 인간이나 다름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고 하시더라. 그 의미를 영상으로 구현해보고 싶었고 꼬마전구가 단초였다. 흔히 어떤 현대 미술작품을 봤을 때 대중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다. 미술계에서는 아름답다고 극찬하는데, 자기가 볼 때는 잘 모르겠거든. ‘이건 이래서 아름답고, 저건 저래서 아름다운 거야’라는 훈육적인 방식으로 대중이 아름다움을 학습하듯이 배워가는 것 같다. 우린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뉴스 프롬 노웨어’는 어떻게 출발한 프로젝트인가.
=전준호_처음 던진 질문은 ‘예술은 무엇일까’였다. 왜 인류의 역사가 수천년이 흘렀는데 사람들은 생산적인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음악을 버리지 못할까. 왜 사람들은 도시를 처음 만들 때 미술관부터 먼저 지을까. 심지어 할리우드 SF영화를 보더라도 재난이 닥쳐오면 미술관의 그림부터 먼저 빼지 않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시각예술이라는 동종업계 사람들과의 대화에 머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학자에게 예술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동물학자는 과연 예술이 진화한다고 보는지 궁금했다. ‘뉴스 프롬 노웨어’는 한마디로 질문 여행기 같은 거다. 고수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배우는 과정 이었다.
문경원_사실 이렇게 프로젝트가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
전준호_사회, 종교, 과학,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 질문을 만들다보니 일이 눈덩이 굴러가듯 점점 커지게 되었다. (웃음)

-이창동, 고은, 정구호, 최재천, 정재승, 도시 이치야나기, MVRDV 등 내로라 할 만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어드바이저로 참여했다. ‘고수’를 선정하는 기준은 뭐였나.
=전준호_자신의 인생과 예술에 대해 실천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 진정성을 지닌 사람을 찾았다.
문경원_한마디로 ‘액티비스트’를 찾은 거다.
전준호_우리가 만난 분들은 단순히 모호한 비주얼을 보여주거나 허망한 수사를 날리는 분들이 아니었다. 그분들은 대부분 공통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재미있었던 점은 개개인으로 만나보면 굉장히 니힐리스트라는 거다. 이창동 감독님은 영화가 죽었다고 하시고, 고은 시인님은 시가 죽었다고 하시더라.
문경원_한 분야에서 경지에 오른 분들이 그 분야에 대해서 이미 다 죽었다고 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예술은 어떠냐고 우리에게 물어보시기에 “예술도 죽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웃음)
전준호_처음에는 그분들이 모두 각자의 분야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그분들에게서 희망을 봤다. 죽고 나면 늘 새로운 게 태어나잖나. 그분들이 ‘죽음’을 얘기하는 건,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그리움이나 동경 때문이었다.
문경원_모든 게 없어지고야 마는 죽음이 아니라, 일종의 축제 같은, 새로운 탄생을 전제한 죽음이라 해야 할 거다. 이런 의미의 얘기들에 예술가로서 정말 공감이 갔다.

<세상의 저편>

-공동 작업을 하며 두분 특유의 스타일을 조율하는 데 애로사항은 없었나.
=전준호_많이 싸웠지. (웃음)
문경원_많이 싸웠지만,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다보니 나중에는 은근히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는 면이 있더라. (웃음)
전준호_이전 작업에서 서로가 지닌 색깔과 비전이 매우 달랐었다. 경원씨는 하나의 주제나 모티브를 깊게 파고들어가는 스타일이다. 객관적이고 감정을 배제한 채로. 나는 넓고 얇게 들어가는 스타일이다. 내러티브보다는 서사나 감정선을 좋아하고.
문경원_선생님이 주제를 넓게 확장해나가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미시적으로 계속 파고들어가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다른 작업방식이 결과적으로 프로젝트에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카셀 도큐멘타>에서의 전시는 어떻게 구성되나.
=전준호_‘키노 스페이스’라는 공간에서 <세상의 저편>이 상영될 거고, 그 옆 공간에서 정구호씨를 비롯한 여섯명의 공동 아티스트들이 만든 영화 속 미래의상과 소품을 소개하는 설치 전시가 진행될 거다.

-한국 관객도 두 사람의 전시를 관람할 기회가 있을까.
=전준호_9월 광주 비엔날레에 이 프로젝트로 참여한다. 이미 홈페이지(www.newsfromnowhere.kr)에 작업 과정에 대한 뉴스 레터를 만들어 이메일로 소식을 발송하고 있다.

-‘뉴스 프롬 노웨어’ 프로젝트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전준호_프로젝트에 한계성을 두고 싶지 않다. 이 프로젝트는 여러 사람의 실타래 같은 생각이 파생되어나가는 프로젝트다. 누구는 실타래로 천을 만들고, 누구는 옷을 만들고, 누구는 이불을 만든다. 이렇게 실타래 같은 생각들이 다양한 곳에 흡수되고 이로부터 시너지를 얻어 다양한 형태의 프로젝트들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마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웃음)
문경원_개인 작업을 하면서 늘 목마르는 지점이 있었다. 그런 지점에 대한 갈증 해소가 선생님과 함께 협업하며 풀어지는 부분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공동 작업에 필요한 배려와 조율의 과정을 배우며 그로부터 개인 작업에 대한 목마름이 생긴다. 이렇게 개인 작업과 공동 작업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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