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자기소개를 할 때 “지구 멸망과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고 한 적이 있다. 부동산쪽은 농담이었고 지구 멸망쪽은 진담이었다. 물론 그 종류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처럼 지구가 사라지거나, <혹성탈출>처럼 인류 문명만 소멸하거나, <12 몽키즈>처럼 모든 생명체가 멸종하는 것같이 여러 가지일 것이다. 지구가 쪼개지는 <멜랑콜리아>는 지구 생태계 절멸에 대한 ‘우주적 관점의 리포트’ 같기도 했는데, 우울증 환자라면 이 동시적 사멸이야말로 오히려 위안이었으리란 생각도 든다. ‘나만 죽는 게 아니’라는 진실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하지만 ‘모두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란 망상은 탐미적인 영상으로 포장된다.
불가항력적인 종말을 미리 보여주는 오프닝이 특히 강렬한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흐르는 첫 8분은 ‘신비롭고 아름다운 과학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감흥을 주기도 한다. 지구 멸망에 대한 이 반역적인 감각은 불쾌하기보다는 괴상한데, 신비적 탐미주의(바그너는 나치와도 밀접했다)가 우울증(라스 폰 트리에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필 만한 단서이기도 하다. 물론 이 현실 도피의 쾌락을 향유하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