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2012년에 살고 있는가?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시간을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전두환은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은 것도 모자라 국가보훈처 골프장에서 귀빈 대접을 받으면서 ‘29만원 할아버지’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정부기관이 스님, 재벌 회장, 대법원장까지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사찰했지만 검찰은 실체를 모른다고 한다. 어떤 국회의원은 조선시대 십자가를 밟게 해 천주교 신자를 가려냈듯 종북 좌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거나 “전두환은 사면된 사람이니 사열 논란은 오버”라고 발언해 ‘과거회귀 종결자’로 등극했다.
영화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육영수 여사에 관한 영화 제작 붐이 그것이다. 충무로의 여러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여러 영화사가 육영수 여사 영화를 준비 중이다. 아직 공식화된 프로젝트는 없으나 주인공을 누가 맡게 됐다거나 어떤 감독이 연출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충무로에 육영수 추모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는…(에휴~) 뭐 여러분들의 짐작이 맞다. 이건 초등학교 2학년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굳이 정리하자면, 이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의 어머니이니 투자가 쉬울 것이라 판단하는 모양이고 실제 사정도 그렇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한 대기업이 투자를 결정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만약 그분의 지지자가 몰린다면 흥행도 기대해볼 만하다.
시간이 역류한다는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영화는 <26년>이다. 모두 알다시피 이 영화는 2009년 애매한 이유로 투자가 취소됐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사건. 그래도 이 과정에서 권력의 마사지가 개입됐다는 것은 짐작 가능하다. 이후로도 제작사 청어람은 이 프로젝트를 되살리려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대기업들은 이런저런 경로로 투자가 힘들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중에는 정치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명시한 곳도 있었다”고 밝힌다. 다행스러운 소식은 7월 중 <26년>이 촬영에 돌입한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시도했던 크라우드 펀딩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등장해 반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나머지 제작비를 조달하기 위해 또다시 크라우드 펀딩을 펼친다 하니 나도 계좌를 열어볼까 생각 중이다.
아무튼 관객 입장에선 흥미롭게 됐다. 육영수 여사 영화나 <26년>이나 모두 올해 말, 그러니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개봉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국면이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고 김근태 의원의 고문과정을 그리는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도 이 시기에 개봉될 예정이니 어쩌면 영화들이 대선 전초전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벌써 관객의 선택을 짐작하긴 어렵지만, 글쎄…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려는 분이 과연 얼마나 될까?
PS. 문학평론가 신형철씨의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4주에 한번씩 우리는 정묘한 영화 내러티브 분석과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