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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말만 하지 말고, 보여줘 제발~
2012-06-25
글 : 류형진 (전 영화진흥위원회 정책 연구원)
한국영화의 중국 진출, 범정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열린다
중국 개봉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둬들인 <만추>(6480만위안, 약 110억원).

“한국영화의 내수시장은 한계에 도달했다. 거대한 중국시장만이 기회의 땅이다.” 전 직장의 대표가 매일같이 얘기해서 귀에 못이 박혔다. 하지만 정말 중국이 한국영화산업에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론 매우 비관적이다. 매년 30%에 가까운 성장 곡선을 타고 있는 시장이라면 이미 성장을 주도하는 내부 동력이 있다고 봐야 한다.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외부에서 구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중국이 해외시장보다 자국시장에 관심이 많다는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중국의 영화산업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보호와 규제 정책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 그 안에서 기업 단위의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극장 개봉할 수 있는 한국영화는 연간 3편 정도에 불과하다. 매년 국내 개봉하는 한국영화 150편 중 단 1∼2%만 중국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 연간 10편 이상의 라인업을 굴리는 국내 유수의 배급사들이 자사영화 중 1편도 중국에 보내기 힘들다면 중국시장 개척에 진력할 수 있을까.

완성작 수출이 막혀 있기 때문에 한국영화계는 공동제작이라는 대안을 들고 중국시장에 접근하고 있다. 공동제작을 통해 중국영화로 인정받으면 중국의 수입쿼터에 걸리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공동제작을 하기로 결정해도 제작비를 중국에 자유롭게 보내고 받을 수가 없다. 또 어찌어찌해서 중국에서 제작을 하고 돈을 벌어도 그 돈을 한국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묘연하다. 5만달러 이상의 외환 거래는 중국 정부의 까다로운 승인 절차로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현재 중국과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들 대부분이 중국과 홍콩의 환전브로커들을 이용하고 있다. 물론 이건 불법이다. 아니면 직원들이 1인당 1만달러씩 들고 국내에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 자금을 주고받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이 절실하다면 뭔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그 해법을 찾아보고자 중국과의 공동제작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중국 사무소를 통해 가이드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98%가 부족하다. 영진위 같은 일개 지원기관이 아니라 외교, 행정권한을 가진 정부 부처들이 범정부적 차원에서 나서 중국의 대외정책 전반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중 FTA, 한-중 공동제작 협정과 관련한 지난한 준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안 마련을 한다고 해서 실무회의에 들어가보면 이건 안되고 저건 빼고 하는 논의만이 반복됐던 경험이 있다. 또 한-미 FTA가 그랬던 것처럼 분명 콘텐츠 산업과 관련된 여러 정책은 여타 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한 대가로 저만치 밀려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말 한국영화산업이 위기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타개할 방법이 글로벌 시장밖에 없다는 정책적인 판단을 했다면, 그리고 청와대가 그렇게 줄기차게 콘텐츠 산업이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주장해왔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부는 정부다워야 한다.

2011년 중국의 극장 매출은 131.15억위안(2조3600만원). 전년 대비 29%가 성장했다. 또 지난해에만 3030개의 스크린이 늘어나 전체 스크린 수가 1만개를 훌쩍 넘어섰다. 극장 박스오피스는 세계 3위다. 시장이 커졌다고 청신호가 켜지는 건 아니다. 2004년 이후 중국시장은 조금씩 개방되고 있지만 해외영화의 중국시장 점유율은 외려 줄고 있다. 최근 영진위가 펴낸 <중국 영화산업 현황과 한·중 공동제작>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기존의 자국영화 보호책 외에도 “해외영화를 주로 비수기에 상영하거나 주요 중국영화의 상영 시기에 해외영화 상영을 보류시킨다거나 해외영화의 상영허가를 늦게 내줌으로써 흥행시점을 놓치게 만드는” 식의 편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특히 국유기업 육성을 통한 내수시장 창출에 관심을 쏟고 있는 시진핑 체제가 올해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출범한다면 한국영화의 차이나드림 실현은 더욱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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