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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이런 떡대가 ‘베어’스타일이라고
2012-06-26
글 : 남민영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출연한 디폴리오 김준범 이사

김조광수 감독의 첫 장편영화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극의 소소한 재미를 담당하는 게이 6인방의 얼굴 중 퍽 낯익은 인물이 보였기 때문이다. 매주 <씨네21> 디지털 매거진을 선보이는 디폴리오의 컨버전스사업부 김준범 이사가 바로 그다. <두결한장>의 게이 6인방 중 ‘체격’을 담당하는 주노가 된 그를 보고 있노라니 그간 어떻게 그런 ‘끼’를 감추고 살아왔는지 궁금해졌다. 낮에는 회사의 중역으로 밤에는 현장에서 영화배우로, <두결한장>을 통해 인생 최고의 이중생활을 맛본 배우 김준범을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물었다.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김조광수 감독이 제작한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 흥행에 성공해서 김조광수 감독과 그의 애인, 조광희 변호사, 이준동, 원동연 제작자와 축하 파티를 겸해서 푸껫에 갔다. 피피섬에 가려고 보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가이드가 아무리 봐도 동성애자 같더라. 근데 말을 참 재미있게 하기에 내가 심심해서 그분 말투를 흉내냈다. 김조광수 감독이 그걸 보고 끼가 있다고 같이 영화하자고 하더라. 같이 갔던 제작자들도 만약 김조광수 영화에 출연하면 우리 영화에도 배우로 써주겠다며 부추겼다. 하지만 나는 비전문배우니까 괜히 나섰다 욕먹을까봐 사양하려고 했는데 김조광수 감독이 티나 역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아이패드로 시나리오를 봤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나한테 맡긴다는 데에 놀라서 “미친 거 아니냐, 더위 먹었냐”고 물어봤다. (웃음) 그렇게 농담처럼 오가다가 캐스팅이 진행되면서 티나 역할을 박정표씨가 맡게 되고 나는 주노 역을 맡게 됐다.

-게이 6인방 중 주노의 비중이 굉장히 크더라.
=사실 부담이 많이 됐다. 그런데 왕언니 역을 맡은 박수영씨나 마담 역할을 맡은 이승준씨 모두 나보다 동생이고 워낙 잘하는 배우여서 나를 많이 도와줬다. 셋이서 취미도 비슷해서 촬영 없어도 밥먹고 술먹으러 다녔다. 그런 점이 현장에서 마음이 편할 수 있었던 큰 이유다.

-사실 게이 역할은 배우들도 기피하는데 두렵지 않았나.
=거리낌이 없었다. 해외에서 유학할 때 그런 친구들이 많았고 김조광수 감독 커플도 오래 알고 지냈다. 물론 이 영화를 찍으면서 실제 내가 동성애 성향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아니더라. (웃음) 내가 만약에 젊은 배우였다면 앞으로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고민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비전문배우니까. 내가 생각하는 신념과 대치되지 않으니 편안하게 임했다.

-수영장 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가슴의 털을 보고 솔직히 깜짝 놀랐다.
=영화를 찍으려고 12kg이나 찌웠다. 게이들도 다 취향이 다르지 않나. 호리호리한 사람을 좋아하는 부류가 있으면 나처럼 체격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부류도 있는 거지. 실제 게이 사이에서 나처럼 체격있는 사람을 ‘베어’라고 한다더라. 그래서 감독님이 절대 살빼지 말라고 하셨다. 문제의 그 수영장 장면을 찍는 날 리허설할 때 가운을 슥 내리니까 가슴에 털을 보고 여자 스탭들이 소리를 지르더라. 촬영감독님은 “분장하신 거죠”라고 하더라. (웃음)

-김조광수 감독이나 동료 배우들은 연기를 어떻게 평가하던가.
=첫 리딩날 남자배우들이 모두 모였는데 “연기를 처음하는 김준범씨 소감이 어때요”라고 묻더라. 나중에 들은 얘긴데 리딩날 제대로 못하면 바로 자르려고 했다더라. 나는 그냥 “얼떨떨하고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소리를 들은 다른 배우들이 “연기 처음이세요?” 하면서 놀랐다. (웃음)

-현장에서 김조광수 감독에게 따로 디렉션을 받은 건 없나.
=말투나 표정에 대한 세세한 부분에서였다. 열심히 했으나 미안한 건 장례식 장면이다. 엎드려서 울어야 하는데 살이 찌니까 엎드리면 피가 쏠리더라. 그렇다고 얼굴을 들어버리면 진짜 눈물을 뚝뚝 흘려야 하는데 그건 힘들고. 참 고생하면서 찍었다.

-영화를 본 주변 사람들은 뭐라고 하던가.
=나를 부추겼던 제작자 3인방은 감독이 나를 편애했다고 하더라. 클로즈업이 왜 그렇게 많냐면서. 분명히 그 세명이 나를 출연시켜준다고 약속해놓고 영화가 개봉하니 말이 사라졌다. 어제도 만났는데 다들 먼 산만 보더라.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영화배우로서의 김준범을 기대할 수 있을까.
=같이 출연한 배우들이 배우는 선택받는 직업이라 하더라. 이제 나도 선택받길 기다려야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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