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정애연] 한 꺼풀을 벗고
2012-06-28
글 : 강병진
사진 : 오계옥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정애연

“누군가를 품고 있다는 게 좋더라.” 정애연은 사실상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하 <두결한장>)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온전한 연인을 연기했다. 외모가 지닌 날선 기운은 그동안 그녀에게 누군가를 욕심내거나, 뺏길 수밖에 없거나, 사랑에 무심한 캐릭터를 안기곤 했다. 하지만 극중에서 민수와 계약결혼을 한 효진의 레즈비언 연인인 서영은 효진과 투닥거리지도 않고, 오히려 그녀를 보듬는다. 유쾌하고 털털한 원래 성격을 드러내 보인 것도 <두결한장>이 처음일 거다. 데뷔 10년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그녀에게 찾아온 변신의 기회다.

-주로 뭔가를 욕심내는 쪽의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두결한장>의 서영은 다르다.
=항상 짙은 화장을 한 도회적이고 뇌쇄적인 여자였다. 다른 걸 하고 싶었는데, 이미지 때문에 잘 안 찾아주시더라. <두결한장>은 내가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걸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캐릭터 또한 이때 아니면 못해 볼 것 같더라.

-평소 동성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글쎄, 일단 포비아는 아니었다. 모델로 이쪽 일을 시작했는데, 메이크업을 해주는 분들 가운데 게이 성향을 지닌 분들이 더러 있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런 분위기에서 어울렸기 때문인지 부담은 없었다. 흔히 여자들은 고등학생 때도 비슷한 감정을 겪지 않나. 나는 그때도 커트머리를 하고 다녀서…(웃음) 동생들이 되게 많이 좋아했다. 당시에는 나도 ‘내가 만약 저애를 좋아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오빠들도 나를 많이 좋아했다. (웃음)

-그러고보니 전작에서도 긴 머리로 연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게 말이다. 사실 아기를 낳고 활동을 쉬면서 길렀었다. 김조광수 감독님이 짧은 머리가 좋겠다고 해서 단칼에 자른 거다.

-<두결한장>의 연기를 보면서 정애연이라는 배우의 목소리가 남다르게 들렸다. 중저음의 목소리인데, 이번 영화에서 상당히 잘 들린 것 같더라.
=정말 그렇지 않나? 사실 그동안 내 목소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얼굴은 이렇게 생겼는데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잠시 연극을 했던 게 그 때문이었다. <국화꽃향기>와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했는데, 무대를 통해 내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이제는 내 목소리가 어떻게 들릴까에 많이 신경쓰지 않고 연기한다.

-극중에서 민수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연기를 하는 동안 그렇게 편하게 웃어본 적이 있던가.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나한테 정말 얼굴이 편해졌다고 하더라. 옛날에는 세고 딱딱해 보였는데 예뻐졌다고 한다. (웃음)

-그런데 사실 영화에서 서영의 분량은 많지 않다. 효진과 서영 커플의 이야기가 주가 아니기 때문이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도 궁금했다.
=시나리오상에서는 어느 정도 분량이 있었다. 서영과 효진이 함께 민수의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에서 서영이 참다 못해 사실을 털어놓으려는 장면도 있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이해는 되더라. 어쨌든 <두결한장>은 민수의 성장영화니까.

-분량이 적은 만큼, 서영이 어떻게 살아왔을지 상상했을 거다.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 그녀는 대학 때 학생회장을 했고 이미 그때 먼저 커밍아웃을 했을 거라고 했었다. 효진은 커밍아웃을 안 했지만, 서영이 그녀를 위해 그루터기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도 그런 성격 때문일 테고. 실제의 나와도 어느 정도 비슷한 성격이다. 이전에 연기할 때의 나는 한 꺼풀을 씌워서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내가 고등학생 때 행동했던 모습들을 연상했다. 실제 동성애자 분들과 많은 대화를 하기도 했다. 애인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잠자리 이야기까지 물었다. 시나리오에 잘 나와 있지 않으니 내가 물어볼 수밖에 없겠더라. 놀라웠던 건, 동성애자 분들에게는 동거가 곧 결혼이라는 거였다. 일단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만큼 헤어질 때도 서로를 더 놓기 힘들다는 얘기가 와닿았다.

-<두결한장>은 아이를 낳은 뒤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작품이다.
=배우라면 정말 출산을 경험해봐야겠더라. 여자에게는 출산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 세상이 달라 보인다. 평소 선배들에게 어떻게 저런 연기가 나올까 놀라워하기만 했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런 연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걸 알겠더라. 좀더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면 내 태도도 달라질 것 같다. 영화보다는 드라마쪽일 텐데, 내 나이에 겪는 고충들이 많이 다뤄지지 않나. 고부간의 갈등이나 부부문제라든가. 사실 배우라고 해서 크게 다르게 생활하는 건 아니다. 집에서는 똑같다. 다만 캐스팅에서는 제약이 있을 수도 있겠지. 나보다는 매니저가 많은 제약을 느낄 거다. 하지만 난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후회한 적이 없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의 목표가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아무래도 아직은 그 목표에 다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부족한 게 많아서 그렇다. 사실 20살 때부터 이야기하고 다닌 게, 좋은 연기자가 돼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겠다는 거였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그날이 올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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