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가시>는 생소해도 ‘연가시’란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연가시란 곱등이, 메뚜기, 사마귀 등과 같은 곤충에 기생한 뒤 어느 정도 자라면 숙주를 물가로 데려가 자살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번식하는 기생충을 말한다. 영화는 신경조절물질로 숙주를 조정해 자살시키는 독특한 생존방식 덕분에 화제가 되었던 이 끔찍한 기생충이 어느 날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출발한다.
제약회사 영업사원 재혁(김명민)은 발바닥에 땀나도록 달린다. 한때 강의도 했던 박사였지만 동생 재필(김동완)의 꾐에 넘어가 있던 재산 다 날리고 가족 얼굴 한번 제대로 볼 시간도 없이 영업에 매달려야 하는 신세다. 그러던 어느 날 전국 하천에 일제히 변사체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 원인이 인간에게까지 기생하는 ‘변종 연가시’ 때문임이 밝혀진다. 짧은 잠복시간과 치사율 100%의 기생충의 출현에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정부는 감염자 전원을 격리 수용하는 등 과감한 대처에 돌입한다. 한편 아내와 아이들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된 재혁은 치료제를 구하고자 애를 쓰는 와중에 연가시의 출현이 단순한 사고가 아님을 알게 된다.
<연가시>는 포스터만 보고 호러영화인 줄 알았는데 정작 껍질을 벗겨보니 본격 액션재난영화였다. ‘살인기생충’이란 홍보문구에 당연히 ‘에일리언’식의 괴수호러영화를 떠올렸지만 정작 영화에선 연가시의 징그러운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연가시>는 재난에 휩쓸린 사람들의 광기어린 모습과 이를 수습하려는 당국의 시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연가시에 감염된 가족을 구하려는 가장의 분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공식이다. 이 영화는 <투모로우> 같은 전형적인 재난영화의 패턴 위에 안전하게 놓여 있다. 인간을 위협하는 무언가가 등장하고,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고, 그럼에도 주인공은 오직 가족을 위해 애쓴다. 그 과정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속도감있는 전개가 이 영화의 핵심이자 유일한 성취다. 연가시의 출현에 대응하는 정부와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은 사실적이고 그럴듯하다. 빠른 전개로 밀어붙이는 일련의 사건은 설득력있는 장면들과 맞물려 상당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인물들의 전형성도 이 영화에선 장점이다. 영화를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부담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김명민의 연기는 과할 여지조차 없는 빤한 캐릭터 안에서 도리어 전체적인 중심을 잡아준다. 덕분에 나머지 인물들의 연기도 영화가 원하는 역할에서 크게 모자라 보이지 않는다.
반면 참신할 뻔했던 소재는 거꾸로 영화의 발목을 잡았다. 연가시 웹툰부터 동영상까지 각종 매체를 통해 연가시의 공포감을 잔뜩 고조해놓고 정작 영화는 얌전을 빼고 있으니 맥이 풀릴 수밖에 없다. 기껏 ‘연가시’라는 끔찍한 생물을 스크린에 되살려놓곤 그 혐오스런 매력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특히 중반 이후 영화의 긴장감이 현격히 떨어지는 건 더이상 연가시 감염자들이 확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포를 어디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가 관건인 여타 재난영화와 달리 <연가시>의 공포는 치료약이 발견된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끝나버린다(심지어 연가시를 박멸하는 구충제 ‘윈다졸’은 지금 실제로 약국에서 절찬 판매 중이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오로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음모를 파헤치는 액션영화로 돌변한다. 가족코드가 언제나 잘 먹히는 인물의 동력이긴 하지만 ‘결국 주인공과 가족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식의 결말에서 실소가 터져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