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나 <컨테이젼>의 스티븐 소더버그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헤이와이어>는 실제 미국 종합격투기(MMA) 스타 출신 지나 카라노를 원맨 주인공으로 내세운 액션영화다. 그렇다고 <오션스> 시리즈의 그와 겹쳐보는 것도 딱히 큰 도움이 안된다. 오래전 소더버그의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한 <조지 클루니의 표적>이나 <오션스> 시리즈처럼 고전 장르영화의 쾌감을 산뜻하게 보여주는 작품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첩보액션 장르라는 점에서 연상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본 시리즈다. 바르셀로나와 더블린, 그리고 뉴욕과 샌디에이고를 오가며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락없이 본 시리즈의 여성 버전이다.
말로리 케인(지나 카라노)은 1급 여성 첩보요원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아론(채닝 테이텀)과 임무를 수행하던 그녀는 억류돼 있던 중국 기자를 구출해내는 데 성공하고, 케네스(이완 맥그리거)의 지시로 또 다른 극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더블린으로 파견된다. 하지만 계획이 실패하면서 말로리는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것과 가족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은 장본인을 찾아나선다.
소더버그가 (영화에도 그녀의 거주지로 등장하는) 샌디에이고로 직접 찾아가 출연을 제의한 지나 카라노야말로 <헤이와이어>의 모든 것이다. MMA 전적 7승1패, 하지만 마지막 경기의 TKO 패배 굴욕 이후 영화배우로 전업한 느낌이다. 내년 개봉예정인 <패스트 앤 퓨리어스6>에도 출연한다. ‘여자 제이슨 본’이라고 할 만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고 후진으로 질주하며 경찰차를 따돌리고, 가공할 실전무술로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는다. 그만큼 소더버그 영화들 중 격투 액션의 비중이 가장 높을 것이다. 전력질주는 물론 니킥과 암바 등 남자들을 압도하는 지나 카라노의 액션을 순도 높게 보여주기 위해 거의 롱테이크로 동선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더불어 <오션스> 시리즈를 봐도 알 수 있듯 사운드트랙의 과잉에다 총격전을 고속촬영과 흑백영상으로 담는 등 액션영화에 대한 소더버그의 갈증을 일시에 해소하는 듯한 영화다. 게다가 캐스팅은 또 어떤가. 마이클 더글러스, 안토니오 반데라스, 이완 맥그리거가 함께 있는 ‘간지’는 요즘 쉬이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그런데 지나 카라노의 원맨쇼와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시나리오의 응집력은 약하다. 액션 신 또한 강도에 비해 스피드는 다소 떨어진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영화는 <본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쿠엔틴 타란티노가 스턴트우먼 출신 조 벨을 전격적으로 주연으로 발탁했던 <데쓰 프루프>다. 신선한 캐스팅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아이디어의 부재, 그것이 <헤이와이어>를 향한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