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위대한 작가의 최후 <더 레이븐>
2012-07-04
글 : 장영엽 (편집장)

1849년 9월28일 아침, 에드거 앨런 포는 볼티모어의 어느 병원에 빈사 상태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5일 뒤, 볼티모어의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이 넋이 나간 채 ‘레이놀스’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포를 발견했고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끝내 그는 숨을 거뒀다. 에드거 앨런 포의 죽음은 그의 미스터리적이고 음울한 작품 세계의 완성이었다. 아무도 포가 최후의 5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떤 연유에서 ‘레이놀스’라는 이름을 불렀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더 레이븐>은 백지처럼 남아 있는 이 위대한 작가의 최후에 연쇄살인이라는 허구의 상상을 덧씌운 팩션이다.

영화의 포문을 여는 건 포의 단편 <모르그가의 살인>을 닮은 죽음이다. 밀실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모녀를 발견한 볼티모어 경찰청의 필즈 형사(루크 에반스)는 이 살인이 에드거 앨런 포(존 쿠색)의 소설을 모방한 범죄라는 걸 곧 깨닫는다. 포의 작품을 닮은 살인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자 필즈는 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 와중에 포의 연인 에밀리(앨리스 이브)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절망에 빠진 포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한편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살인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을 패트리어트란 지역신문에 연재하라는 것이다.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레이븐>을 기다리며 더욱 궁금했던 건 추적과 살인의 과정이 에드거 앨런 포란 문학적 인물의 특성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느냐는 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포의 유전자보다 스릴러영화의 문법을 이어받은 작품 같다. <함정과 진자>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 <아몬틸라도 술통> 등의 범죄 과정을 재현한 장면들은 개별적으로는 섬뜩하고 잔혹하지만, 공통되는 정서를 함유하고 있진 못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과 비교해 말하자면, <어셔가의 몰락>과 <검은 고양이>가 훌륭했던 건 에피소드가 기발하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독자를 서서히 신경증적인 공포로 몰아갈 줄 아는 분위기 함양 때문이었는데 기승전결이 너무나도 확실한 <더 레이븐>에선 그런 점이 부족해 보인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데 온 힘을 쏟다보니 정작 공포와 음울한 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이다. 존 쿠색의 포가 아쉬운 까닭도 그의 부족한 역량 때문이라기보다는 제한된 틀 안에서 캐릭터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적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레이븐>은 상당히 짜임새있는 스릴러영화이며, 에드거 앨런 포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팬 서비스’ 장면을 곳곳에 남겨놓았다. 포의 생전 절친한 조력자였으며 포의 부고 기사를 쓰기도 한 평론가 루퍼스 그리스월드가 연쇄살인범의 두 번째 희생양이 되고, 포가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알려진 연극 무대 뒤편이 사건 장소로 등장한다. <브이 포 벤데타> <닌자 어쌔신>의 제임스 맥티그 감독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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