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1995 단편 <이중주>로 등단
1996 장편 <새의 선물> 발표, 소설집 <타인에게 말걸기> 발간
1998 단편 <아내의 상자>로 이상문학상 수상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발표
2000 <내가 살았던 집>으로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2001~현재 소설집 <마이너리그> <상속>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장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 발표
뙤약볕이 내리쬐던 주말 오후, 은희경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태연한 인생>의 마지막 장을 덮고 산책을 나섰다. 해를 피해 그늘로 걷는데, 서늘하게 식은 공기가 소설의 온도와 비슷했다. 초라한 비유를 동원하자면, 은희경의 소설은 이따금씩 걸어 들어가고 싶은 그늘 같다. 그곳에서 생의 뜨거운 불덩이들은 냉각작용을 거쳐 깊은 고독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녀가 이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명인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고독의 크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와 마주 앉던 날, 그 고마운 그늘이 소설 밖에도 드리웠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고독과 친해지는 법’을 아는 데까지 들려주었다. 그 너머는 다음에 또 같이 가보자 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 편도행 여정이 그녀를, 그리고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 우리를 흘러가게 하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을 끝내고 ‘트친’ 이이언씨와 홋카이도에 다녀오셨더라고요.
=아, TV서 보셨구나. 산문집에도 썼지만,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술 마시고 여행 계획 짤 때가 제일 좋아요. 다들 바빠서 자주 그러진 못하지만요.
-어려운 코스의 여행도 즐기시나요.
=내가 놀기를 좋아하고 성격이 조금 안이한 편이어서 잘 풀어져요. 그래서 일부러 여행도 힘든 여행을 가려고 노력해요. 안나푸르나도 간 적 있어요. 베이스캠프까지긴 했지만.
-하프마라톤도 뛰신다고 들었는데, 그 역시 몸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입니까.
=우연히 어떤 환경마라톤에 나갔는데 뛸 때 내가 강해지는 느낌, 고양되는 느낌이 좋더라고요. 소설이 안 풀릴 때 몸을 움직여야 머리도 열리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마음과 몸의 감각을 연다는 기분으로 뛰어요. 한편으로는 나를 괴롭혀서 토해내게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는 어느 동화작가는 온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아령을 하더라고요. 다들 사투를 벌이고 있죠. (웃음)
-계간 <창비>에 1년간 연재한 소설이니까, 지난해 이맘때쯤 1부를 쓰신 건가요.
=쓰기 시작한 건 봄이었어요. 근데 이 소설이 6일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잖아요. 봄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니까 기억이 희미해지더라고요. 봄을 계속 떠올리며 쓴 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출생지는 어딘가요.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1부를 썼어요. 원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소설을 쓰러 갔었어요. 여자친구들의 30년간에 걸친 인생 이야기였는데, 너무 안 풀리는 거예요. 그러다 ‘잠깐, 나처럼 소설이 안 풀려서 괴로운 소설가 이야기를 그냥 써보자’ 싶었죠.
-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꺼려왔던 방식이라 어색하고 두려웠는데, 창작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넓혀서 쓰다 보니 나아지더라고요. 인생에 관해 자기 관점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는 자기 독려와 자기 모색을 해나가는 얘기가, 어떻게 타인을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그게 사랑 얘기가 됐어요.
-중년의 소설가 요셉과 대립하는 젊은 예술가로는 이안이라는 이름의 영화감독이 등장합니다.
=토지문학관에 같이 입주해 있던 사람들 중에 시나리오작가도 있고 영화감독도 있었던 것이 소설 속으로 들어왔어요. 그래서 작가들이 글 쓸 때 주변에 가지 말라는 말도 있잖아요. 꼭 등장한다고. (웃음)
-‘작가의 말’에 이번 소설은 그런 우연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쓰셨는데, 우연을 포착하는 소설적 방식이란 어떤 것입니까.
=마침 내가 고민하던 것과 내가 경험한 것이 맞아떨어져서 소설로 들어오는 거죠. 그런 식으로 지난해 ‘대단한 단편영화제’를 심사했을 때나 몇년 전 홍상수 감독의 <첩첩산중>에 출연하면서 쌓은 구체적 경험들도 이 소설에 들어왔을 거예요.
-소설 속 영화 <위기의 작가들>을 시나리오 형식으로 쓰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지금껏 소설로 세련되고 치밀하게 써오려고 했던 것에서 벗어나보고 싶었어요. 일부러 영화처럼 느껴지는 장면은 영화처럼,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장면은 연극처럼 썼죠.
-그런가 하면 소설의 첫 장은 사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류의 아버지가 류의 어머니를 처음 본 순간이 한 문장으로 ‘찍혀’ 있고, 그것이 곧 첫 문단을 이룬다는 점에서요.
=낡은 사진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요셉의 현실로 들어가기 전에 사랑에 관한 원형적인 장면에서 시작해서 그것이 변주되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뒤로 가면서 첫 장면의 해석을 달리할 때마다 그림의 색조도 조금씩 달리했죠.
-요셉과, 그를 사랑하지만 끝까지 가보기 전에 돌아서는 류는 사랑의 패턴화된 서사와 싸우고 있습니다. 소설가로서 선생님도 어떻게 패턴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셨던 건가요.
=소설가가 소설을 못 쓰는 이유가 익숙한 것에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의 말에서 뭔가에 화가 나 있었다고 썼는데,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고 있음에도 그 관점에 맞추려 애쓰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나 있었거든요. 다 작파하고 내 멋대로 써보자 싶어서 그런 주인공들을 만든 거죠. 그런데 개개인의 ‘내 멋대로’는 타인과 부딪힐 수밖에 없잖아요. 그때 요셉은 절망하고, 류는 ‘타인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니까 서로간의 고독을 인정하자, 고독끼리 친해지도록 내버려두고 그냥 흘러가자’고 생각한다는 점이 다르죠.
-제 경험 부족이겠지만, 류의 세계는 너무 쓸쓸해서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여쭤보고 싶어졌습니다. 패턴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이 가능할까요.
=나도 생각으로 거기까지 도달한 것일 뿐이에요. 이렇게 말해도 되나. (웃음) 둘 중 어느 쪽이냐 묻는다면 나 역시 요셉쪽에 가까워요. 하지만 타인에게 내 방식을 강요하는 게 폭력적이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류라는 인물을 설정한 거죠.
-선생님의 소설에 나오는 사랑은 언제나 얼마간 쓸쓸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연애 얘기나 사랑 얘기를 조금 비관적으로 쓰는 편인데, 지금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의 설렘을 깨거나 한창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열정에 찬물을 뿌리고 싶어서는 아니에요. 그런 쓸쓸함을 알고 관계를 맺어야 크게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아서죠. 사랑의 상실을 맞닥뜨렸을 때 류의 생각을 떠올리면 조금은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요. 식는 것도 사랑이구나, 하면서. 그래서 슬픈 사랑 이야기도 필요한 것 같아요.
-사랑을 촉발하는 것은 이미지이고 지속시키는 것이 서사라면,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생활은 서사고 매혹은 이미지라고 얘기했던 건데, 처음부터 상대의 이면을 전부 봐버린다면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매혹을 받아들이니까 가능한 거죠. 그렇지만 시간이 가고 서사가 쌓이면 자아와 이기심이 다시 생겨나고 서로 부딪히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기 전에 류와 요셉은 멈춰버린 거예요. 거기까지예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 내 감수성을 집중해서 도달한 게. 그다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다음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되겠죠.
-선생님의 소설적 세계를 한 단어로 응축한다면, 역시 ‘고독’일까요.
=사람마다 예민하게 느끼는 정서가 있는데, 나한텐 그게 고독인 것 같아요. 어느 날 내가 쓴 소설들을 봤더니 내가 어렸을 때 따돌림받았던 시기로 계속 돌아가더라고요. 그때부터 고독에 매혹돼왔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혼자여야 한다, 다정함은 지속되지 않는다고 일부러 자꾸 되뇌게 돼요. 자칫 따뜻함에 녹아버릴까봐 스스로를 냉각시키는 성향이 있나봐요.
-1990년대는 한국 문학의 관심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옮아간 시기입니다. 그 자장 안에서 선생님의 소설이 성공을 거둔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 자신도 1990년대에 데뷔했기 때문에 작가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이 있어요. 개인을 통해서 시대를 바라볼 수 있는 때가 됐던 거죠. 20대였던 1980년대에 작가가 됐다면 개인적인 것을 쓸 만한 용기가 없었을 거예요. 개인의 고유성을 주장하기에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저를 1990년대 작가라는 틀로 분류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죠.
-대중적인 작가로서 사랑받고 있는 만큼 오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으신가요.
=저는 관심을 많이 받는 작가 중 하나니까 오해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봐요. 그런 사람들까지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없이 괴로워질 때는 가끔 있지만요. 진짜 상처받는 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오해할 때예요. 또 이거 보고 주변에서 ‘난가? 난가?’ 할까봐 걱정돼요. (웃음)
-소설가로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느낄 때도 있지 않으세요.
=그럼요. 소설가가 돼서 제일 좋은 건 나쁜 일을 맘껏 해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악역을 쓸 때가 훨씬 재밌어요. 이번 소설의 요셉처럼 평소에 못하는 독설도 마구 날려보고요. 소설에서까지 착한 짓 하고 싶지는 않잖아요. 근데 이것도 착한 척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데 더 솔직해지고 있다고 느끼십니까.
=내 얘기를 가공하는 방법이 더 세련돼졌을 뿐이죠. 나의 현실은 오히려 그런 기술이 모자랐던 초반 작품들에 더 많이 반영됐을 거예요. 이번 소설은 딸이 보고 그러더라고요. 여러 사람을 여러 번 나누고 섞은 게 보인다고.
-소설 쓰시면 주로 따님에게 먼저 보여주나요.
=<소년을 위로해줘> 땐 또래 이야기라 먼저 보여줬고, 이번에는 남편에게 제일 먼저 보여줬어요. 요셉의 성격으로 좀 따온 것들이 있었거든요. 엊그제 작가 친구들과 책거리를 했는데, 다들 이안에 자신을 대입해 읽었더라고요. 그러면서 요셉한테 감정이입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고 하기에 내가 그랬죠. 아냐, 있어, 우리 집에. (웃음)
-지난해에는 트위터나 인터넷에 캐주얼하게 올린 짧은 글들을 묶어 첫 산문집을 내셨어요. 일정 길이 이상의 완성된 작품만 발표해온 작가로서 선뜻 시도하기 어려운 방식이었을 것 같은데요.
=나답지 않은 일이었어요. 소설은 냉철하게 쓰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허술한 데가 많거든요. 그런 자신을 노출하는 게 두려워서 산문은 안 썼어요. 그러다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면서 변했죠. 나의 실체를 알면 다들 날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때 약간 들떴었어요. 책을 묶어서 낼 때는 약간 차분해진 다음이어서 ‘내 인생의 가장 소란스러웠던 때’라고 작가의 말에 붙였었죠.
-혹 트위터가 선생님의 고독을 희석시키진 않을까요.
=실제로 내 트위터를 보고 실망한 독자들도 있어요. 소설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다르게 너무 귀여운 척을 한다고. (웃음) 나를 소설가로 만든 건 고독이니까 트위터가 있었으면 나는 소설가가 안되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가 내가 진짜 좋은 소설가라면 트위터 정도에 그렇게 조건반사적이어서는 안되지, 라는 생각에 급히 반성한 적은 있어요. 근데 대체로는 음주 트윗이 많아서…. (웃음)
-술은 역시 싱글 몰트 위스키인가요.
=잠이 안 올 때 혼자 종종 마셔요. 그런 시간이 괜찮아요. 어떤 자리에 가서도 그 자리가 빨리 끝나서 집에서 혼자 마시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제는 고독이 싫지 않고 그 안에서 내 세계를 만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