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에디토리얼] 당신의 커밍아웃을 지지합니다
2012-07-09
글 : 문석

지금 미국은 앤더슨 쿠퍼의 커밍아웃으로 시끄럽다. <CNN>의 간판 앵커이자 맹렬한 종군기자로도 유명했던 그는 멋진 은발과 잘생긴 얼굴로 미국 시청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피플>이 꼽은 ‘가장 섹시한 남자’로 여러 번 꼽혔을 정도. 그런 그가 7월2일 인터넷 매체 <데일리 비스트>의 편집장 앤드루 설리번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나는 게이다. 나는 여태까지 게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사실을 밝히는 게 더이상 행복할 수 없고 편안하고 자랑스럽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 그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이 게이임을 알려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 메일에서 남을 취재하는 기자라는 직업상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이 꺼림칙했고 사생활의 영역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아왔지만, 그것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불편해하고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한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아서”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쿠퍼가 설리번에게 이같은 메일을 보내게 된 것은 미국 대중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이하 <EW>)의 영향이 컸다. <EW>는 최근호에서 TV 스타들의 잇단 커밍아웃을 보도했다. <빅뱅 이론>에서 셸든으로 출연하는 짐 파슨스, 영화 <스타트렉: 더 비기닝>과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재커리 퀸토, <화이트 칼라>의 젊은 변호사 매튜 보머, <모던 패밀리>의 제시 타일러 퍼거슨(그는 이 드라마에서 게이 변호사로 출연한다) 등이 최근 들어 동성애자임을 선언했다는 것이다. <EW>가 주목한 사실은 그들의 커밍아웃 방식이 일상적인 게 됐다는 점이다. 짐 파슨스는 그가 출연하는 연극 <하비>의 소개 책자 속 프로필 ‘33번째 줄’에서 게이라고 적어놓았다. 재커리 퀸토도 잡지 <뉴욕>에 실린 프로필의 한 구절을 통해서, 매튜 보머는 시상식장에서 커밍아웃했다. <EW>는 1997년 <타임> 커버스토리를 통해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충격 고백’한 엘렌 드제네러스와 비교했을 때 엄청난 변화라면서 “60년 전이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고 20년 전이면 어려웠을 일이 이제는 큰일이 아니게 됐다”고 말한다. 설리번은 이 기사를 본 뒤 쿠퍼에게 커밍아웃 의사를 조심스레 타진했던 것이다.

한국의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들로서는 이같은 미국의 관대한 분위기가 상당히 부러울 것이다. 한국에서 커밍아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두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미국에서 LGBT의 권리가 오랜 투쟁 끝에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투쟁에는 커밍아웃이 포함된다. 특히 스스로 죄책감을 갖거나 따돌림당하는 LGBT 청소년들에게 앤더슨 쿠퍼 같은 유명인사의 커밍아웃은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결국 <두번의 결혼식…> 같은 영화가 잘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영화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한국의 성적 소수자들도 당당하게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 사회는 더 풍부한 다양성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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