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다른 속셈, 같은 목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2012-07-11
글 : 김성훈

스티븐 소더버그가 만든 동명의 영화와 아무 상관없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는 에로영화가 명함을 내밀던 1996년을 무대로 불러들인다. 에로영화 감독 경태(이무생)와 에로 배우 판섭(심재균)은 다방 주인 형수(고수희) 몰래 다른 비디오방과 계약한다. 형수는 자신이 운영하는 다방에서 에로영화를 틀어주고, 그렇게 번 돈으로 다시 경태에게 투자하는, 이른바 불법 비디오 업계의 투자·배급사다. 경태가 배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형수는 사채업자 ‘소보로’를 시켜 빌려준 돈을 모두 갚으라고 독촉한다. 그때 궁지에 몰린 경태와 판섭에게 한 줄기의 희망이 나타난다. 신이 내린 몸매의 소유자 주리(티나)가 마카오 유흥업소로 진출하기 위해 에로영화를 찍겠다는 거다. 각기 다른 속셈이지만 공통의 목표를 공유한 세 사람은 마지막 에로영화에 도전한다.

컴퓨터 앞에서 몇번의 클릭만으로 이미지를 재생하는 ‘야동 소비시대’에 에로의 거장 봉만대 감독이 돌아왔다. 극장용 장편영화로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2003) 이후 거의 9년 만이지만, TV용 영화 <TV 방자전>, 스마트폰으로 만든 단편 <맛있는 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해온 그다. 다소 복잡한 플롯의 줄거리를 보면 그가 이번 영화에서 섹스나 사랑보다 드라마와 액션에 공을 들이는 듯하다. 덕분에 비디오테이프를 몰래 구해다 보던 시절의 청계천, 몇푼 되지 않는 돈 때문에 서로의 뒤통수를 노리는 먹이사슬, 불법 비디오테이프의 메카, 세운상가와 관련한 허무맹랑한 음모론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에로영화 산업의 풍경이 나열된다. 그러나 이야기가 너무 장황한 건 아쉽다. 빼먹을 뻔했다. 섹스 신을 연출한 봉만대 감독의 솜씨는 어디 안 갔다(주리 역의 티나는 2001년 슈퍼모델 출신으로 많은 에로영화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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