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염치를 잃은 사람들 <로스트 인 베이징>
2012-07-11
글 : 강병진

제작된 지 5년여 만에 한국에 개봉하는 <로스트 인 베이징>은 이제 ‘말’이 만들어낸 영화가 됐다. 중국 정부는 도박장면과 성적인 묘사를 문제삼았고, 제작사는 2년간 제작 불가란 통보를 받아야 했다. ‘도대체 영화의 수위가 어느 정도이기에?’라는 호기심이 당길 법하지만, 사실 중국 정부가 문제삼은 건 성이 아니라 마사지였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자국의 이미지 개선에 나선 정부로서는 베이징 발마사지 업소의 실태를 묘사한 장면이 삽입된 이 영화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스트 인 베이징>의 이야기도 섹스를 중요한 화두로 삼는 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섹스보다 중요한 건 ‘임신’이다. 핑궈(판빙빙)와 안쿤(동대위)은 돈을 벌기 위해 베이징으로 온 동거커플이다. 발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던 핑궈는 어느 날, 사장인 린동(양가휘)에게 겁탈당한다. 이 일로 안쿤이 린동에게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가운데 핑궈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자식을 얻을 기회가 생긴 린동과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안쿤은 핑궈를 제외시키고 거래를 시작한다.

<로스트 인 베이징>에서 사람들이 잃어버린 건, ‘염치’다. 린동은 핑궈를 겁탈하고도 체면 때문에 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안쿤은 핑궈의 안위보다 그녀가 낳을 아이로 벌어들일 돈에 눈이 멀어 있다. 린동과 안쿤이 돈을 놓고 벌이는 거래의 현장은 어이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로스트 인 베이징>이 냉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고발하려는 영화는 아니다. <물고기와 코끼리> <관음산> 등을 연출한 리위 감독은 린동의 아내인 왕메이를 포함해 4명의 남녀가 아이를 통해 맺는 기이한 관계를 냉소와 조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로스트 인 베이징>은 현대의 중국을 관찰한 성실한 소묘로서 의미를 지닐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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