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풋풋한 처녀와의 뜨거운 밤을 나에게 선사하고 싶소.” 아흔 번째 생일을 맞은 엘사비오(에밀리오 에체바리아)는 친애하는 ‘뚜쟁이’ 로사 카바르카스(제랄딘 채플린)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이런 딱한 양반.” 청을 들은 그녀는 그에게 기다려보라고 말한다. 늙음을 연민하는 두 늙은이들 앞에 단추공장에서 일하는 가여운 소녀(파올라 메디나)가 나타나고, 그렇게 후텁지근한 밤하늘 아래 노인과 소녀의 첫사랑이 시작된다. 이후 노인과 소녀가 조심스레 어루만지는 현재 속으로 노인이 쓰는 일요칼럼과 그의 과거의 잔영이 얽혀들면서, 영화는 한 노인의 절절한 연애소설이자 동시에 담담한 회상록이 되어간다.
감독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일흔일곱살에 발표한 원작 소설의 구조를 충실히 따른다. 그 결과, 또 한편의 ‘소설 읽어주는 영화’가 완성됐다. 문제는 그 ‘충실함’이 종종 불필요한 독백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정적인 분위기만으로 충분할 순간에, 영화는 노인의 입을 빌려 소설에 나오는 구절들을 낭독하고야 만다. 그때마다 관객은 문학적인 것들이 충분히 영화적인 것들로 여과되지 못했다고 느낄 수 있겠다.
더불어 소설은 일인칭 시점이 지배적인 반면 영화에는 소녀의 시점이 추가되어 있다. 노인이 잠든 사이 소녀가 그의 셔츠를 걸쳐보는 모습, 단추공장에서 감독관이 읽어주는 일요칼럼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어쩌면 소녀를 대상으로서만 다루는 방법이 영화에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추가된 장면들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남미의 밤공기 속 습기만큼 두텁게 스며 있는 노인의 인생과 사랑을 서투르게 건조시켜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