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맞서 싸우는 사람은 누구라도 이 과정에서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또한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심연 역시 당신 속을 들여다본다.” 배트맨이야말로 니체가 <선과 악의 저편>에서 언급한 이 경구에 어울리는 존재일 것이다. 고담시의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가는 ‘어둠의 기사’ 말이다. 그가 품은 어둠은 부모와 사랑하던 여인 레이첼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나 법체계의 바깥에서만 정의를 실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배트맨 비긴즈>에서 배트맨, 즉 브루스 웨인(크리스천 베일)의 죄책감과 분노를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인도해준 의붓아버지 같은 존재 듀커드(리암 니슨) 또한 그가 가진 어둠의 근원이다. 그는 <배트맨 비긴즈>에서 듀커드를 해치움으로써, 즉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그 어둠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배트맨이 마침내 그 어둠을 근원까지 제거하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다. 굳이 따지자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다크 나이트>보다는 <배트맨 비긴즈>의 속편에 가깝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배트맨의 적은 베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당이지만 그 위에는 라즈 알 굴과 어둠의 기사단, 그리고 듀커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니까 크리스토퍼 놀란은 일반적인 속편에서 드러나는 무차별 확장 경향(더 커진 규모와 물량) 대신 <배트맨> 3부작을 자기완결 구조로 만드는 쪽을 선택한 듯하다. 브루스 웨인이 갇히게 되는 교도소가 <배트맨 비긴즈>에서 어린 웨인이 떨어져 갇히는 우물과 유사하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작인 <다크 나이트>보다는 다소 처지는 영화다. 그것은 우선,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악당의 ‘품격’ 차이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우리 세계에 만연해 있는 공리주의적 사고의 허점을 파고들어 배트맨뿐 아니라 관객마저 패닉에 빠뜨렸던 전작의 조커에 비해 베인은 전략적 사고와 강한 힘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단순한 악당이다. 아나키즘이라는 조커의 명확한 지향점에 비해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지는 베인의 목적은 ‘블록버스터 클리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배트맨의 내면적 갈등도 <다크 나이트>에서의 그것과 비교할 때 2차원적이며 전편의 시카고 시내 거리 액션만 한 어마어마한 액션도 없다.
물론 이런 비판은 가혹할 수 있다. <다크 나이트>는 정말 보기 힘든 ‘명품 블록버스터’였고 조커 또한 사상 최고의 악당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전제이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를 기준점에 놓지 않는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이야기 면에서나 비주얼 면에서나 대단한 장점을 가진 영화임에 틀림없다. 캣우먼과 형사 블레이크 같은 새 캐릭터도 활력을 주는 요소다. 무엇보다 ‘괴물과 맞서 싸우는 괴물’ 배트맨의 모험담이 끝났다는 사실은 슬프기까지 하다. 그가 품고 있던 어둠은 결국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암흑의 세계를 극대화한 것이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