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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영화음악이 펼치는 연기, 들어보실래요?
2012-07-31
글 :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케빈에 대하여> 음악 맡은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

린 랜지 감독의 <케빈에 대하여>는 충격적인 영화다. 끔찍한 장면이 아닌 이해 불가한 상황으로 관객을 괴롭힌다. 여기엔 음악도 한몫한다. 낙천적인 분위기의 삽입곡들과 다소 신경질적인 스코어가 내내 충돌한다.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이자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상실의 시대>(2010)의 음악감독이던 조니 그린우드는 <케빈에 대하여>에서 인상적인 사운드 스케이프를 선보인다.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의 라디오헤드 공연으로 처음 한국 땅을 밟는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케빈에 대하여>는 음악도 중요하다. 린 램지 감독과는 어떻게 조율했나.
=린 램지와는 수많은 미팅과 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관건은 적절한 악기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쇠줄로 된 하프와 중국 비파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해결점을 찾았다. 공포영화 음악 같은 분위기를 지양하되 공허와 소외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둘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케빈에 대하여>의 신경질적인 스코어는 에바의 심리 상태를 따라가는 것 같다.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 혹은 결심했던 건 뭐였나.
=‘깨져버린’ 로맨틱함과 다소 차가우면서도 아이 같은 순수함을 떠올렸다. 여기엔 쇠줄로 된 하프가 제격이었다. 하프는 보통 로맨틱한 악기로 여겨지지만 쇠줄일 때에는 아주 어둡고 차가운 소리를 낸다.

-케빈이 에바의 방을 온통 더럽히는 과거와 사건이 벌어진 뒤인 현재 장면에서 샤미센이나 비파 같은 아시아 발현악기 소리가 흐른다. 무시무시한 긴장감을 주는 순간이기도 한데, 당신의 솔로 작업들을 ‘현악기의 다채로운 활용’이란 관점으로 봐도 좋을까.
=비파를 사용하자는 건 린 램지의 아이디어였다. 비파 연주가인 리우팡을 무척 좋아하는 감독 덕분에 그녀가 직접 연주한 중국 전통음악 <매복>을 녹음할 수 있었다. 활로 연주하는 현악 사운드를 쓰자는 아이디어가 영화와 잘 어울렸다. 그래서 보드 솔터리(bowed psaltery, 남부 유럽의 민속 현악기-편집자)와 아동용 바이올린(실제 아이들이 연주하기도 했다) 소리도 영화에 넣었다.

-당신의 영화음악은 사운드로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당신이 좋아하는 올리비에 메시앙처럼 음악이란 ‘소리’를 낭만화하지 않고 동시대에 놓아두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메시앙의 음악은 정말 마법 같아서, 사랑과 초자연성으로 충만해 있다. 학생 시절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순간, 그가 생존해 있을 뿐 아니라 계속 작곡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흥분했다. 내가 좋아한 다른 밴드들처럼 그의 음악과 내가 동시대적으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아름다운 음악이란.
=음의 전개 하나하나가 듣는 이를 놀라게 하는 음악이 좋다. 무작위로 음을 펼쳐놓은 게 아니라 예상을 뛰어넘으면서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그렇지만 둔감한 것은 아닌, 그런 소절이나 사운드를 들을 때의 놀라움 말이다. 그래서 에이펙스 트윈 같은 뮤지션을 높이 평가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스코어는 “영화음악의 가능성을 재정의했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음악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가, 아니면 영화에 달라붙어 기능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보는가.
=연극을 직접 보는 것과 대본을 읽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대본만 읽으면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지만 절반의 이해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대본이 잘 쓰였는지, 읽을 만한지 정도는 판가름할 수 있다. 영화음악은 영화와 별개일 때는 무의미하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The Master>에 참여했다. 그와 두 번째 작업인데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혁신적’인가.
=<케빈에 대하여>처럼 약간 비뚤어진 사랑을 표현하는 로맨틱 스코어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데어 윌 비 블러드>처럼 완전히 무조의 현악 소음 같은 것은 넣을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좀 이상한 음악인 것 같다.

-영화음악 작업에 허락되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에서는 굉장히 짧다.
=할리우드도 영화음악 작곡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분장이나 조명보다 덜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 좋게도 나는 음악에 집착하는 감독들과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 이상 버려질 걸 알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음악을 만들어 보내곤 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심지어 음악에 맞추기 위해 영화를 편집하기도 했다. 나는 클릭 트랙(음악 더빙 시간을 맞추려고 미리 녹음해두는 신호음) 같은 건 사용하지 않고 모든 음악을 공들여 녹음했다. 영화음악도 일종의 연기를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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