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의 한 시골마을에서 “붉은 애송이”로 태어나 신화로 남은 예술가. 영화 <말리>는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2011년 국내 개봉작 <라이프 인 어 데이>의 케빈 맥도널드 감독은 사진과 뉴스클립, 콘서트 영상, 그리고 친지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밥 말리의 탄생부터 죽음의 순간까지를 연대순으로 좇아간다. 기교를 거의 배제한 채 간소한 형식으로 일대기를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말리>는 주변 사람들의 기억으로 쌓아올린 소박한 헌사와 같은 작품이 되었다.
<말리>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배척당했던 밥 말리의 유년기와 밴드 ‘웨일러스’를 결성하고 라스타파리아니즘에 심취해 음악적 전환을 맞는 과정에 특히 주목하며, 전설의 기원을 개인사적인 차원에서 되짚는다. 인간 밥 말리는 여인들 사이를 자유로이 떠도는 방랑자이자 무뚝뚝한 가장이었고, 타인을 쉽게 믿지 않는 현실감을 보이는 반면 테러의 위협 속에서도 무대에 올라 평화를 설파하는 이상주의자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 인류의 통합을 촉구하는 그의 메시지가 결코 추상적인 유토피아주의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신념이 개인사를 관통하는 고단한 전투의 결과물임을 영화를 통해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투의 배경에는 수없이 많은 자메이카인들, 더 나아가 캐리비안 해역으로 긴 여정을 떠나야 했던 아프리카 선조들의 격통이 가로놓여 있다. 레게음악을 이끌어낸 정신도 마찬가지다. <말리>는 레게의 경쾌한 리듬이 전복적인 유머와 아득한 환영으로 이루어진 사실상의 울부짖음임을 보여준다. 그 때문일까. 영화의 담담한 화술이 남기는 꽤 긴 여운 속에서, 한 지독한 예술가의 열망에 끝내 고개를 숙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