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이 빙산을 찾지 못하고 1평짜리 얼음 위에 간신히 기어오를 때, 바다거북이 사는 갈라파고스섬을 시꺼먼 기름이 둘러쌀 때, 그리고 사바나의 야생동물들이 우기에도 물 한 방울 구경할 수 없게 된 이유가 인간이 지은 댐 때문임이 밝혀질 때, 어른들은 끝을 상상한다. 동심으로 무장한 <빌리와 용감한 녀석들 3D>는 그 끝에서 출발해 지구의 운명에 도전한다. 신기하게도 목숨을 보전한 북극곰과 바다거북은 수탉, 캥거루, 주머니곰과 함께 세상에 마지막 남은 지상낙원을 찾아 사바나에 도착하고, 거기서 목마른 미어캣 빌리와 사자, 기린, 코끼리 친구들을 만난다. 그리고 곧 빌리의 지휘 아래 대대적인 댐 폭파작전이 가동된다. 이 ‘노아의 방주’급 무한도전을 위해서라면 지극히 자연적인 정글의 법칙은 잠시 미뤄두어도 좋다.
짐작건대 이는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 끼치는 해악에 대한 자괴감에서 시작된 애니메이션인 것 같다. 또는 문명과 자연 사이에 깨져버린 균형과 정의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교육 프로젝트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의도는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문제는 결과물의 효과다. 이 영화가 야생동물들을 의인화하고 계층화하는 방식에서는 자연에 대한 경외나 존중보다 인간(혹은 지배계급)을 향한 설익은 분노가 더 많이 느껴진다. 인간과 동물이 벌이는 싸움도 따지고 보면 나쁜 인간과 동물의 탈을 쓴 착한 인간의 싸움이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을 위한 넋두리와 아이들을 위한 교육용 비디오 사이에 애매하게 걸친 영화가 나왔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상투적인 대사로 무장한 우리말 더빙판은 특히 실망스럽다. <라이온 킹>이나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여주는 편이 나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