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도 아니고 프리퀄도 아니다. 말 그대로 리메이크다. 그런데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이 개봉한 건 1990년이다. 자기 완결성과 창의성을 그대로 간직한 22년 전의 블록버스터를 리메이크하겠다고 나섰다면 그에 걸맞은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다. <언더월드>와 <다이하드4.0>의 렌 와이즈먼은 지난 22년간 발전된 특수효과가 리메이크의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토탈 리콜>은 CG 초창기에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였다. 당시의 리뷰들을 찾아보면 기차를 타고 가는 아놀드 슈워제네거로부터 카메라가 점점 멀어지며 화성을 조망하는 CG장면에 대한 찬사들로 가득하다. 요즘에야 그런 건 제3세계의 독립영화 감독들도 컴퓨터 앞에서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오래된 영화를 CG로 업그레이드하는 동시에, 렌 와이즈먼은 버호벤의 이야기와는 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버호벤의 영화도 필립 K. 딕의 원작으로부터 기본 아이디어만 가져와서 완벽하게 새로 각색한 이야기였다. 렌 와이즈먼과 커트 위머(<이퀼리브리엄> <솔트>)는 버호벤의 영화에서 화성을 제거하고 1980~90년대 사이버펑크 영화들, 특히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력을 심어놓았다. 그게 성공적이냐고? 일단 이야기를 한번 보시라. 아름다운 아내 로리(케이트 베킨세일)와 함께 사는 노동자 더글라스 퀘이드(콜린 파렐)는 매일매일 의문의 여인 멜리나(제시카 비엘)와 함께 쫓기는 악몽을 꾼다. 악몽의 근원을 알고 싶던 더글라스는 가상의 기억을 심어준다는 회사 ‘리콜’을 방문하는데, 기억을 심는 과정에서 갑자기 군대가 밀어닥친다. 스파이로 몰리게 된 더글라스는 아내 로리마저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혼란에 빠진다.
렌 와이즈먼이 가장 공을 들인 새로운 설정은 지구 중심을 관통하는 중력열차 ‘폴’이다. <토탈 리콜>의 세계는 화학전으로 지구 대부분이 오염돼버린 미래로, 오염으로부터 안전한 영국연합과 오스트레일리아 식민지로 나뉘어 있다. 영국연합에는 지배층이 살고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노동계급이 살아가는데, 노동계급은 폴을 타고 영국으로 출퇴근한다. 중력열차가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렌 와이즈먼은 버호벤 영화의 화성이라는 무대를 대신할 만한 극적 무대가 필요했을 것이고, 중력열차는 꽤 재미있는 영화적 장치다. 다만 전작의 화성이라는 무대가 주는 SF적 로맨티시즘이 완벽하게 제거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CG로 영화 전체를 덧칠했음에도 불구하고 <토탈 리콜>의 주요 액션 시퀀스들은 평이하다. 공중을 떠다니는 호버카 액션 시퀀스는 <제5원소>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참고한 흔적이 역력한데, 참고 목록들의 속도감과 흥분을 뛰어넘지 못한다. <다이하드4.0>에서 브루스 윌리스를 전투기 위에 던져놓고도 (그 장면의 중요한 참고 목록이었을) <트루 라이즈>의 해리어기 장면을 넘어서지 못했던 걸 떠올려보시라. 와이즈먼은 꼼꼼하고 창의적으로 장면을 설계하는 데는 여전히 거장들을 못 따라간다.
많은 장면에서 와이즈먼은 버호벤의 영화에 오마주를 보낸다. 이 오마주 장면들이 와이즈먼의 <토탈 리콜>이 가진 근본적인 약점을 강렬하게 드러낸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가슴 세개 달린 여자는 PG13등급에 맞추느라 브래지어를 차고 등장한다. R등급의 성인용 오락거리였던 버호벤 영화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브래지어로 가린 격이랄까. 그 유명한 검문소 통과 장면에서는 콜린 파렐이 CG로 만든 홀로그램 가면을 쓰고 나온다. CG가 아닌 전통적인 특수효과로 창조했던 버호벤 영화 속 검문소 장면의 시각적인 괴이함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렌 와이즈먼의 <토탈 리콜>은 리콜이 필요하다. 아니, 리메이크 기획 단계에서 이미 리콜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