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랄까. 대만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2007년 개봉했던 주걸륜, 계륜미 주연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인기를 연상시키며 지난해 중화권 영화시장에서 크나큰 열풍을 일으켰다. 지난해 외화를 포함한 대만 개봉영화 중 전체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고 타이베이영화제 관객상, 대만금마장신인상(가진동) 등을 수상하며 이전까지 연기 경력이 전무했던 주연배우 가진동을 깜짝 스타로 만들었다. 옴니버스영화 <애도저>(2009)에 참여하며 데뷔했던 인기 작가 구파도를 일약 주목받는 감독으로 만든 것도 물론이다. 영화에서 가진동의 첫사랑 ‘션자이’를 연기한 첸옌시는 지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이 작품 이후 출연한 <소울 오브 브레드>로 참가하기도 했다. 대만 청춘영화의 현재랄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로 혜성처럼 등장한 구파도(九把刀, 오른쪽) 감독, 배우 가진동(柯震東)을 만났다.
-1994년이 배경이다. 실제 당신의 체험과 밀접한 관련이 있나.
=구파도_맞다. 그때 나도 고등학생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잡지나 만화책, 그리고 집에 붙어 있는 이소룡, 왕조현 브로마이드 전부 그 시절의 기억들이다. 실제 내 첫사랑이 2005년에 결혼했고 그때 결혼식에 참석해서 이 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소설로 먼저 완성하고서 영화화를 기다렸는데 적당한 감독을 만나지 못해 직접 찍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웃음)
-상대배우인 첸옌시와는 10살 이상 나이차가 난다(가진동 1991년생, 첸옌시 1983년생). 그런 데서 오는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가진동_그런 어색함은 전혀 없었다. 연기 경험이 없어서 그것 자체가 난관이었다. 오히려 연상의 누나들을 좋아해서 즐기면서 연기한 편이다. (웃음) 힘든 점은 집에서 늘 벌거벗고 있는 설정이라 그렇게 돌아다니는 게 가장 힘들었다.
구파도_첸옌시에 비해 키도 크고 부끄럼이 많아서 처음에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카메라 테스트를 계속 진행할수록 영화 속 캐릭터에 녹아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첸옌시가 ‘그 시절 연애하는 감정이 생기는 배우’라고 딱 지목했다. (웃음)
-당신이 처음으로 참여했던 옴니버스영화 <애도저>나 이번 영화도 프로야구에 대한 얘기가 많다. 그리고 당시 대만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승부조작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구파도_(느닷없이 영어로) 브로큰 마이 하트. (웃음) 당시 프로야구를 사랑했던 어린 학생들에게 승부조작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야구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분노했다. 당연히 나도 프로야구의 열렬한 팬이고, 그때 결혼식에 다녀온 다음에도 친구들과 야구를 하러 갔을 정도다. 뭐 잘하진 못하지만. (웃음)
-영화 속 가진동은 왕조현의 열렬한 팬이어서 커다란 브로마이드를 붙여놓고 있다. 실제로도 그랬나.
=구파도_왕조현을 무척 좋아했다. 가끔씩 파파라치 사진이 나오는 것도 반갑다. 다른 팬들은 너무 변해서 안 보는 게 나았을 거라고 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안 좋은 사건이 난 것도 아니고 나이 들어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그렇게라도 보면 기분 좋은 일 아닌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지금 어디선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면 좋지 않은가. 어쩌면 그게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하다.
가진동_이렇게 훌륭한 감독님을 두고 외국으로 가시다니. (웃음) 왕조현을 알긴 알지만 세대가 달라서 영화를 보거나 한 건 없다.
-영화 속 대사로 주걸륜이 등장한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구파도_<하이자오 7번지>(2008)가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됐지만 그전에 주걸륜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더 큰 역할을 했다. 이전 대만영화들보다 수십배 이상의 흥행기록을 세웠고 대만 상업영화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원래는 가수였던 그가 만든 영화였기에 대만사회 전체가 놀란 사건이었다.
가진동_그를 매우 좋아한다. 함께 농구하면서 친해진 사이인데 종종 피트니스 센터에서도 만난다. 실제 모습도 무대 위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늘 에너지가 넘친다. 10살 정도 어린 여자친구 쿤링이 덴마크계 호주인 아버지와 한국과 대만의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한국과도 관계가 있지 않나? 암튼 여자 보는 안목이 높은 것 같다. (웃음)
-주걸륜 외에 좋아하고 닮고 싶은 선배 연기자가 있다면 누구인가.
=가진동_음, 너무 많아서 고민이….
구파도_그럼, 진관희로 해달라. 가진동의 하드디스크를 한번 검색해봐야겠다. (일동 웃음)
가진동_정말 도움이 안되는 사람이다. (웃음) 이제 생각났다. 양조위다. <동사서독>(1994)과 <색, 계>(2007)를 가장 좋아한다. <행운초인>(2003) 같은 코미디영화나 최근 <대마술사>(2001) 같은 작품에서의 그도 좋다. 진지한 것과 코믹한 것 둘 다 아주 능숙하게 소화해낸다.
-<애도저>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모두 다음과 같은 자막으로 시작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각각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구파도_오랫동안 경험한 인생의 의미를 써놓은 거다. 현재의 일은 모두 이전에 있었던 일의 결과로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글 쓰는 작가로 살았지만 지금 영화감독을 하는 것도 그런 어떤 흐름에 놓여 있을 거다. 썼던 작품들의 인세나 판권으로 돈을 꽤 벌었고, 영화 제작 초반에 힘들었을 때 그런 돈으로 제작비 일부를 대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예전에 내가 썼던 모든 작품에 대한 보답으로서, 그리고 지난 일들의 결과로서 나의 현재가 있다.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도 있나.
=가진동_또래 친구들이 한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 최근 2년간이다. 비는 대만에서 상당히 인기가 많아서 콘서트 DVD를 사서 보기도 했다. 춤에 관한 한 아시아 최고인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영화는 원빈이 나온 <아저씨>다. 무척 섬세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한 느낌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청춘영화이자 성장영화다.
=구파도_청춘이라는 소재는 독특하다. 내 영화는 청춘의 상처나 고뇌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단순하고 바보 같은 생각을 소재로 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영화에 특별한 기교를 쓰지 말고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성실하고 기교가 없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 이후 홍콩으로 건너가 견자단 등이 나온 <투게더>에 출연했다. 장차 홍콩과 대륙으로 활동무대를 넓힐 생각이 있나.
=가진동_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투게더>는 옴니버스영화라 견자단과는 만날 일이 없어 아쉬웠고 내 상대배우는 안젤라베이비(양영)였다. 시나리오도 좋았고 대만 외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싶은 생각에 참여했다. 나 역시 장첸이나 주걸륜처럼 더 큰 무대에서 일하고 싶다. 무협영화도 해보고 싶다. 서극 감독의 <칠검>(2005)을 좋아한다.
-멜로, 무협, 액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66편이나 썼다. 그중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리고 좋아하는 중화권 감독이 있다면.
=구파도_내 영화 두편이 다 멜로인데 사실 멜로가 제일 쓰기 어려워서 66편 중 6편 정도밖에 안된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협, 액션, 전투 등 남성다운 소재다. 두기봉 감독을 가장 좋아하고 팡호청 감독과도 시나리오 얘기를 나눌 정도로 친하다. 그래서 다음 작품은 그런 남성적인 영화를 해보려고 한다. 아, 그리고 주성치는 내게 있어 ‘신’이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