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바이브레이터의 탄생기’ <히스테리아>
2012-08-22
글 : 강병진

‘더키’(Duckie)라는 오리인형이 있다. 아기 욕조에 넣어주면 딱 알맞은 크기에 귀염성을 갖춘 장난감이다. 몸을 누르면 꽥꽥 소리를 내는데, 감춰진 단추를 누르면 진동한다. 한 성인용품 회사가 발명한 바이브레이터인 이 장난감은 마니아 사이에서는 올해의 섹스토이로 꼽혔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히스테리아>는 더키가 개발되기 약 100년 전, 자위기구가 아니라 치료기구로서 탄생했던 바이브레이터의 발명기를 그리는 영화다. 치료해야 할 질병의 병명은 히스테리. 환자는 물론 대부분의 여성이다. 그런데 바이브레이터로 히스테리를 치료할 수 있는 걸까?

이야기의 배경은 19세기의 런던이다. 모든 것이 새롭게 정의되던 그때, 의사인 모티머(휴 댄시) 또한 새로운 치료법 개발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병원을 전전하던 모티머는 한 여성전문병원에 자리를 잡는다. 이곳의 의사 달림플은 여성들의 히스테리를 위해 여성의 성기를 직접 마사지하는 치료법을 고안한 사람이다. 달림플이 지닌 신기에 가까운 손기술과 그가 손에 바른 향긋한 기름들은 런던 상류층의 귀부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모티머가 그의 치료법을 사사받으면서 귀부인들의 마음은 모두 모티머에게 향한다. 그는 밀려드는 환자들 덕분에 달림플의 신임을 얻지만, 그의 손은 두개뿐이고, 치료에 단련된 손은 하나뿐이다. 모티머의 손이 마비되면서, 환자들은 모티머를 거부한다. 낙심한 모티머는 어느 날, 발명을 즐기는 친구의 작업실을 찾고 그곳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바이브레이터의 탄생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히스테리아>는 흥미로운 박물지로서의 영화다. 하지만 여성들의 히스테리를 ‘치료’한다는 영화 속 발상을 뒤집어보면, 그리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극중에서 달림플은 히스테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런던에 살고 있는 여성 중 절반 이상이 감염돼 있고 자궁의 지나친 활동이 원인이며 색정증, 불감증, 우울증을 동반하는 질병.” 그의 정의 안에서는 달림플의 딸이자 사회복지운동을 하고 있는 샬롯(매기 질렌홀)이 결혼은 하지 않고 매사 다투고 화내며 사는 것도 히스테리 때문이다. <히스테리아>가 바이브레이터를 통해 주목하는 건, 여성들이 욕망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탓에 그러한 여성들을 환자로 치부했던 어리석은 시대, 그 자체다. 빈틈의 시대를 다루는 영화의 태도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고 여유롭다. 하지만 히스테리가 심각한 여성의 경우에는 정신병동에 입원시키거나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는 당시의 발상을 듣고 있자면, 웃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관람필수다. 더키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간 전세계에서 발명된 바이브레이터들의 모습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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