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김성균] 내가 맞을수록 분위기는 좋아지던걸
2012-08-23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이웃사람>의 김성균

김성균의 맨 얼굴이 궁금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형배(하정우)의 오른팔 박창우를 연기한 그는 촌스러운 단발머리를 하고선 관객을 단박에 1980년대로 타임슬립시켰다. <이웃사람>에서 김성균은 연쇄살인범 승혁이 되어 줄곧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다. 서늘한 눈동자, 조커처럼 웃는 입, 땟국에 까맣게 전 피부는 승혁을 더욱 소름끼치는 인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김성균의 진짜 얼굴이 궁금할 수밖에. 신중하지만 과감하게 자신만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배우 김성균을 만났다.

-영화 데뷔작 <범죄와의 전쟁> 개봉 뒤 인터뷰를 참 많이 했더라.
=코피 터지게 했다.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쏟아지는 이즈음의 상황이 조금 어리둥절할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주목받는다는 느낌은 못 받는다. 전혀 불편함없이 거리를 돌아다닌다. 추리닝에 슬리퍼 신고 다니고, 지하철도 타고.

-배우로서의 삶에는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전문 인력들이 내 주변에 많이 있어 든든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많이 좋아졌구나 싶기도 하고. 처음엔 사람들이 붙어 다니면서 메이크업해주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난 괜찮다고,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고 그랬다. 사실 그분들은 자신의 일을 하는 건데. 이젠 그런 상황에 많이 익숙해진 것 같다.

-개봉은 <이웃사람>이 먼저지만 촬영은 <577 프로젝트>가 먼저였다.
=(하)정우 형이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걸 TV 생방송으로 봤다. 당시 <범죄와의 전쟁> 촬영 중이었고 숙소에서 형이 수상소감으로 공약 거는 거 보고 박장대소했다. 정우 형이 상을 받은 날 바로 부산 촬영장으로 내려왔는데, 숙소에 오더니 “뭐 하냐? 막걸리 한잔 하자” 그러시더라. “형님, 정말 많이 웃었어요. 어떡하실 거예요?” “어, 나 정말 국토대장정 가려고 했어. 너도 같이 가야지.” “네, 형님.” 그렇게 된 거다. 내가 당시 정우 형의 오른팔 역할에 너무 몰입해 있어서 충성심이 충만한 상태였다. (웃음)

-<이웃사람>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김휘 감독은 이번에 이미지 캐스팅을 했다고 하더라.
=대본이 들어왔다. ‘설마 이렇게 큰 역할이 나한테 오겠어?’ 싶었다. 마음을 비우고 감독님을 만났다. 감독님은 잭 니콜슨이 연기한 조커의 이미지를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다. 웃을 때 내 입 모양이 조커가 짓는 표정과 비슷하긴 하다. 이미지가 잘 맞았던 것 같다.

-사실상 <이웃사람>의 주인공은 승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새론이나 김윤진 선배님은 감성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마)동석이 형은 영화의 속도감을 담당했다고 본다. 내 캐릭터는 극중 서스펜스를 담당한 건데, 각자가 부담을 나눠 가지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찍었다.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소녀를 납치하고 살해하는 살인범 캐릭터는 부담스러웠을 것도 같다.
=새론이를 납치, 폭행하는 장면을 찍는 날엔 너무 힘이 들었다. ‘어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세트를 그럴싸하게 꾸며놓아서 정말 살인 현장에 범인으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그리고 승혁이란 인물이 정말 사이코패스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실제로 사이코패스로 규정할 수 있는 범죄자는 극소수라고 하더라. 그렇다면, 승혁을 사이코패스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왜 납치를 한 걸까? 단지 승혁은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데리고 놀고 싶었던 걸 수도 있겠더라.

-승혁은 깡패 사채업자(마동석) 앞에선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전형적인 살인범의 느낌을 살리려고 했는데 거기서 살짝 비틀어보았다. 전형적인 살인범이라면 무서운 게 없어야 하는데 승혁은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을 무서워한다.

-손톱의 때라든지 지저분한 외향은 어떻게 설정한 건가.
=감독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영화 속 내 모습은 메이크업을 한 거다. 더럽게 메이크업을 받은 거지.(웃음) 그런데 김윤진 선배님이 “진짜 자연스럽다. 너 메이크업 안 한 거지?” 그러시더라. 씻지 않는 설정은 좀 극단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다. 직업이 뱃사람이니까 손에 기름때도 묻어 있을 거라는 설정. 그런데 나도 막일을 해봐서 알지만, 험한 일 하시는 분들이 더 깨끗하게 하고 다닌다.

-손끝을 코에 가져다 대면서 냄새를 맡는 장면이 몇번 등장한다.
=승혁이에게 어떤 습관이 있을까 생각했다. 살인범으로서의 습관이 아니라. 내가 가진 습관 중에서 기분 나쁜 습관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음식을 만들거나 젓갈 같은 거 만지고 나면 손에서 기분 나쁜 냄새가 난다. 사람 심리가 웃긴 게, 손에서 냄새가 난다는 걸 알면 냄새를 안 맡아야 되는데 꼭 코에 손을 가져가 냄새를 맡는다.

-피냄새 혹은 비린내 같은 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승혁의 그런 행동은 이상한 종류의 냄새를 자신의 일부처럼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육체적으로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다. 배우 마동석에게 일방적으로 맞는 장면들이 꽤 있다.
=편집이 많이 됐더라. (웃음) 현장에선 즐겁게 맞았다. 내가 비참하게 맞으면 맞을수록 현장 분위기는 좋아졌다. 슬리퍼로 맞는 장면은, 벌건 대낮에 동네에서 싸움이 나고 슬리퍼가 벗겨지고 슬리퍼로 맞고 때리는 리얼한 상황을 상상하면서 동석이 형이랑 애드리브로 만들었다.

-<범죄와의 전쟁> 때도 대사없이 하정우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장면이 많았다. 이번에도 대사 대신 눈빛으로 많은 것을 표현한다.
=무표정에도 한계가 있더라. 그런데 영화가 재밌는 게 똑같은 무표정이라도 앞뒤에 어떤 상황이 붙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나중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감독님, 제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되죠? 저 더이상 표정이 없어요” 그랬다. 속으론 나름대로 이번엔 슬픈 무표정, 이번엔 좀 다른 무표정, 그렇게 미세하게 무표정에 변화를 주려고 했지만.

-초점없는 눈이 클로즈업될 때 인상적이었다.
=김성균이란 배우의 얼굴에서 어떤 걸 입히고 어떤 걸 뺄까 고민했다. 그러면서 승혁이가 밤에 잠은 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얼마나 부지런해야 되겠나. 범행을 저지르고 뒷수습까지 해야 하니까. 얘는 굉장히 피곤한 아이일 것 같았다. 무기력하고 피곤한 상태를 표현하려 했다.

-눈이 짝짝이다. 왼쪽 눈에는 연하게 쌍꺼풀이 있고 오른쪽에는 없다.
=원래는 쌍꺼풀이 없다. 오늘은 생겼는데, 잠을 푹 자면 없어진다. <이웃사람> 촬영 때는 일부러 한쪽 눈에 쌍꺼풀을 만들어서 갔다. 거울을 보면, 왠지 짝짝이 눈이 기분 나빠 보이고 못된 놈같이 보이더라. (손으로 눈꺼풀을 살짝 잡아당겨 쌍꺼풀을 지워 보이며) 이렇게 하면 또 없앨 수 있다.

-십년 넘게 연극을 했다. 영화를 좀더 일찍 경험할 생각은 없었나.
=기회가 없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랐다. 그리고 아마 영화를 일찍 시작했으면 많이 상처받았을 것 같다. 연극하면서 이리저리 채여도 보고 또 주인공 맡아서 어깨에 뽕도 넣어보고 이런저런 상황을 많이 겪어보았기에 지금 이 순간이 있게 된 것 같다.

-<범죄와의 전쟁> 끝나고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예전엔 포기가 빨랐다. 내 계획대로 가면 되는 거니까 쉬고 싶을 때 쉬고 하고 싶을 때 하면 됐다. 지금은 나의 계획, 나의 행보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에 캐스팅됐다. 현재 1회차 촬영만 남겨두고 있다고.
=김윤석 선배님의 고향 후배 역할이다. 시골 청년이고, 많이 못 배웠고, 그러나 마음은 따뜻한 인물이다.

-선배 배우들과의 작업에 전혀 주눅드는 것 같지 않다.
=굉장히 긴장되고 주눅들고 떨린다. 그런데 그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을 집중의 한 부분으로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선 ‘긴장 풀지 마’ ‘긴장 놓으면 안돼’ 그러지 않나. 선배님들 앞에 섰을 때의 긴장감을 연기할 때의 집중력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남쪽으로 튀어> 이후의 행보는 어떻게 되나.
=영화가 될 거고, 지금 다음 작품 준비 중이다.

-이젠 오디션을 보러 발품 팔지 않아도 된다. 예전과는 다른 꿈이나 목표가 생겼을 것 같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인데 여전히 불안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거니까.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앞으로는 글쎄, 이런 상황이 내 인생에 반짝 찾아오는 무엇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꾸준히 작품 열심히 하는 것 외에 큰 욕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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