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곽도원] 영화는 어떻게 이 남자를 살렸나
2012-08-30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드라마 <유령>의 곽도원

‘소간지’에게 감히 ‘미친소’라는 캐릭터 하나로 밀고 들어오는 남자. 나이로 봐도 분명 앞서고, 조각 같은 몸매는 언감생심 따라올 리 없으며, 게다가 드라마는 처음이다. 그럼에도 <유령>에서 곽도원은 미친 존재감으로 소지섭과 동등한 위치를 획득했다. 송하윤과 멜로 구도를, 임지규와 코믹 구도를 형성한 것도 모조리 곽도원 차지였다. 모자이크를 맞춰보면 그는 <러브픽션>의 그 까칠한 황 감독이자, <황해>에선 하정우에게 인상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김승현 교수였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선 조폭보다 더 무서운 조범식 검사였다. 개봉을 앞둔 <회사원>에선 소지섭(맞다, 또 소지섭과 파트너 인증이다)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야비한 전무로, 신정원 감독의 <점쟁이들>에선 귀신을 보는 스님으로 나온다. 추세대로라면 우리가 앞으로 볼 충무로 영화에서 얼마나 더 많은 곽도원의 조각들을 만나게 될지 어림짐작도 안 갈 정도다. 전작들이 개봉도 하기 전 벌써 차기작 <분노의 윤리학> 촬영 중인, 요즘 가장 바쁜 배우 곽도원을 만났다.

-<유령>은 소재가 특이하고 장르가 앞서는 드라마다. 자칫 캐릭터의 묘미가 줄어들 수 있었다. 어떻게 중심을 잡아갔나.
=대본이 4부까지밖에 안 나왔었다. 어떻게 진행될지, 덜 끝날지도 모르니 얼마만큼 욱해야 할지, 또 얼마만큼 냉철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더라. 힌트가 된 건 ‘미친소’ 하나였다. 권혁주라는 캐릭터를 그렇게 만들어놓고 그 선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그때그때 인간의 다양한 부분을 끄집어내서 쓰는 거다.

-조연으로 들어가서 주연으로 나왔다. 캐릭터의 인기, 곽도원이란 배우의 인지도도 동반 상승했다.
=은희 누나(김은희 작가)가 내 연기를 재밌어해주더라. 촬영이 빠듯해지면서 신 넘버도 안 적힌 대본이 현장으로 오기 시작했다. <트윙클> 부를 땐, ‘생각나시는 거 재밌게 해주세요’라고 써 있더라. 아, 누나가 이제 대놓고 나하고 대화를 하는구나 싶었다. (웃음)

-그런 즉흥적인 상황의 속출이라니, 배우 생활의 노하우가 있어서 극복 가능했겠다.
=연극할 때부터 난 셰익스피어의 작품 같은 고전을 못한다. 난 생활 연기, 일상적인 연기를 좋아한다. <유령> 촬영하면서 1, 2회 때까지는 좀 경직되어 있으니 감독님이 그러더라. 무슨 문제 있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다음부터는 내가 동선을 말하면 카메라와 촬영팀이 움직여주더라.

-첫 드라마를 하는 배우에게 파격적인 대우다. 무슨 믿음이었을까.
=고집이 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즐거우면 막 웃다가도 기분이 안 좋으면 금방 표정이 바뀐다. 워낙 평소에 크게 웃다보니 조금만 가만있어도 다들 왜 그럴까, 무슨 일이 있나 한다. 난 납득이 안되면 몸이 안 움직이고, 정서가 안 움직인다.

-빠듯한 TV 제작 스케줄로 감정이 잡힐 때까지 그 상황에 맞게 행동을 한다는 건 너무 여유로운 거 아닌가.
=영화 찍을 때 시나리오 나오면 계속 쳐다보는 게 일이다. 그러면 글자들이 입체감이 생기면서 튀어나온다. 안 나오면 미치는 거지. <범죄와의 전쟁>의 조범식 검사도 그렇게 만들었다. 동네 변호사 사무실도 찾아가보고 하면서 계속 하는 거다. 드라마는 시간이 없다. 목요일 밤 9시50분 방송이면 그날 오후 7~8시까지 찍는다. (최)민식이 형도 “네 스타일로 드라마는 안된다” 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힘든 상황에서 하고 스탭들이 그걸 보고 웃고 박수쳐주니 재미가 생기더라.

-연기는 18살 때 교회 누나 따라 연극 보고 시작했다고 들었다.
=극단 들어가서 만날 극장 청소하고 포스터만 붙였다. 엄청나게 내성적이었다. 처음 들어간 극단에 단원이 14명인데 13명이 내가 연기하는 걸 반대했다. 나 빼고 다 반대한 거다. (웃음)

-작품들 보면 그런 성격이 잘 유추되지 않는다.
=그땐 항상 슬펐다. 술자리에서 노래하라고 하면 혼자 발라드 불러서 분위기 망치고 그러니 누가 좋아하겠나. 집안이 순탄치 못했고 그러다보니 어두웠다. 평소에 막 웃고 그러니 사람들은 내가 밝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하지만 난 하자가 많은 인간이다. 연기는 그런 내 이야기를, 감정을 드러내줄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90년대 초반이라면 최민식처럼 마스크와 연기 모두 날 때부터 배우가 아니고선 진입 장벽이 높은 때였다.
=완전 높았다. 그러다보니 더 하지 말라고 했다. (웃음) 그때 <임꺽정>의 정흥채 형이 뮤지컬을 하는데 거기서 코러스를 했었다. 형이 넌 연극영화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연기를 배우려면 아동극을 해서 담을 키우라고 하더라. <개구쟁이 스머프> <홍길동> <피노키오> 닥치는 대로 다 했다. 하다보니 나만의 어떤 연기 형태가 만들어지더라. 근데 공연을 하러 지방에 갔는데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그길로 연극을 때려치웠다. 나 좋은 일 하다가 어머니 임종도 못 본 거다.

-연기 안 하고 뭘 했나.
=직장 알아보러 다녔다. 그런데 변변한 대학을 나오길 했나, 해놓은 게 연극밖에 없으니 뭘 하겠나. 정신 차려보니 다단계 회사 같은 데 가 있더라. 그러다 뮤지컬할 때 아는 형이 극장 조명 일 아르바이트를 시켜줬다. 근데 무대에서 연기하는 아이들을 보니 연기가 너무 하고 싶은 거다. 출근길 전철에 신문이 있어서 딱 꺼내 보는데 신문 맨 밑바닥에 광고가 있었다. ‘밀양 연극촌 한달 워크숍. 경험자 50만원, 미경험자 70만원.’ 그래, 연기를 할 거면 배워서 하자, 하고 밀양으로 내려갔다. 한달 있으려고 갔는데 거기서 무려 7년을 지냈다. 워크숍 끝나자마자 주인공을 시켜주더라. 물론 80명 중에 잘하는 애들은 셰익스피어쪽으로 시켜줬고, 나같이 못하는 애들은 <산너머 개똥아> 같은 아동극을 시켰다. (웃음) 그게 대수인가. 주인공을 처음 해본 건데.

-밀양의 연희단 거리패라면 연극 사관학교로 통한다. 힘들고 지독하기로 유명하다. 요즘 주목받는 윤제문, 이희준 같은 배우들도 모두 그곳 출신이다.
=거기도 연극 찍어내는 공장이더라. 하루에 대본 세개를 소화해야 했다. 극단 레퍼토리는 한번만 보고 대사를 외워서 공연해야 한다. 연극을 이렇게 해서 되겠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난 투덜대지 않았다. 한 작품이라도 더 할 수 있으니까. 지금 드라마 하면서 임기응변이 가능한 것도 그때 그렇게 해둔 덕분인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 내성적인 성격도 바뀌던가.
=사실 21살 때 사귄 여자친구 때문이었다. 첫사랑이었는데 여자친구가 배신을 했다. 하도 화가 나 잠재돼 있던 내 성격이 다 나왔다. 주눅들고 감정 표현도 못하고 그랬는데 싸움도 하고 화도 막 내게 됐다. 결국 그 여자친구는 가고 성격만 남은 거다. 못된 성격만. (웃음)

-<이재수의 난>(1999) 오디션도 봤다고 들었는데, 막상 영화에선 단역 연기를 빼면 <러브픽션>부터 비로소 주목을 받았다.
=밀양에서 여자를 한명 사귀었다.

-결정적 순간엔 또 연애가 작동한다.
=4년을 사귀었는데 헤어졌다. 그때 내가 선배들 말을 안 듣는다고 극단에서 쫓겨났었다. 앞이 캄캄하더라. 이윤택 대표(연희단 거리패)는 대한민국 연극계에선 가장 높은 분이고 내가 어느 극단에서 연극을 해도, ‘저놈은 잘라’ 하면 잘리는 정도의 파워를 가진 분이다. 그러니 이제 연극을 못하게 된 거다. 만날 술만 먹고 신세한탄을 하고 있으니 여자친구도 내 꼴을 보고 가버린 거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 누나들과는 재산 분쟁으로 안 만난 지 오래지, 공포가 오더라. 이러고 살면 뭐하나, 죽자 했다.

-영화가 어떻게 당신을 살린 건가.
=아는 형네 집에서 술 마시고, 해뜨기 전에 죽어야지 했다. 근데 술 마시고 자다가 일어나보니 그 형네 책장에 <지금 나는 못할 일이 없다>라는 책이 있더라. 몇장 펴보고 그 책이 시킨 대로 하고 싶어졌다. 3박4일 동안 틀어박혀 책에 있는 대로 했다. 책의 가르침은 문제를 막연하게 보지 말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만들라는 거였다.

-결론이 뭐였나.
=일단 여자친구한테 복수를 하고, 나를 연기 못하게 한 이윤택 대표에게 떳떳하게 나서고, 경제적으로 힘든 걸 극복하자. 그러자면 영화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연기도 할 수 있고 돈도 벌게 되고 그걸 보고 내가 성공한 걸 알면 여자친구에게 복수도 되겠지. (웃음) 그때 (오)달수 선배한테도 가서 ‘키워주십시오’ 했는데, 달수 선배가 ‘나는 못 키운다’ 해서 나왔다. (웃음) 그러다 필름메이커스라고 독립영화 스탭, 배우들 구하는 사이트를 알게 됐다. 첫 단편이 미쟝센영화제에 나가고, 거기서 심사위원을 하던 전계수 감독도 알게 됐다. 연기 좋다고들 해주니 오디션 볼 때도 편해지고 자신감이 붙더라. <황해>로 나홍진 감독과 작업하고 그러다 윤종빈 감독과 알게 되고 <범죄와의 전쟁>도 하고 여기까지 온 거다.

-완벽한 복수다.
=얼마 전에 그쪽에서 연락도 왔다. 이젠 그런 연애감정은 아니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복수심으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 영화의 재미도 알게 됐다. 운이 좋은 거다. 고등학교 졸업해서 시작한 연기다. 나이 39살에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알아줄 확률이란 게 몇 천만분의 일 아니겠나.

-본명은 곽병규인데 이름은 언제 바꾼 건가. 도원의 결의, 뭐 이런 뜻인가.
=병규란 이름이 부르기 어렵다고 소속사가 점집에서 받아온 이름이다. 민호, 도원 두개를 받아왔는데 드라마 <꽃보다 남자>로 이민호씨가 엄청 떴을 때라 도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

-<유령>으로 업계에서 배우 곽도원의 위상이 한층 달라졌다.
=지금은 그렇다. 예전에는 나한테 작품이 들어오면 무조건 해야 했다. 기회이니. 지금은 작품을 고른다. 이건 나하고 안 맞아, 이게 되는 거다.

-대세남이란 수식어도 인지가 되나.
=서비스 안주 주는 건 좋은데 술 마실 땐 좀 힘들다. 난 아무것도 아닌데 왜 사인해달라고 하지 싶다. 편하게 막 욕하는 스타일인데, 옆에서 쳐다보니 말도 가려해야 할 거 같다. (웃음)

-지금은 <분노의 윤리학> 촬영 중이다. 다음 계획은 뭔가.
=제주도를 워낙 좋아해서 가서 푹 파묻혀서 멍때리고 싶다. 그런데 <회사원> <점쟁이들> 개봉 시기가 비슷해서 무대인사도 있고… 이젠 제주도 가면 알아보는 사람도 많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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