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충분히 귀여운 영화 <577 프로젝트>
2012-08-29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지난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된 하정우는 마이크에 대고 “올해에도 상을 탄다면 국토대장정에 오르겠다”란 말을 한다. 한데 그는 정말로 수상했고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시 시상식을 지켜보던 시청자 중 누구도 그 발언이 한편의 영화를 탄생시킬 것이라곤 짐작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하정우는 <러브픽션>을 찍는 동안 혼자 나름의 준비를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 인근에서 촬영을 마치는 날엔 집까지 걷는 식으로 이 영화 <577 프로젝트>의 모습을 구상해갔다. 시사회에서 그가 표현한 것처럼 이건 마치 ‘꿈과도 같은’ 현실이다. 말 한마디가 다큐멘터리를 탄생시켰고, 그 결과가 그다지 즉흥적으로만 보이지도 않는다. 신예 이근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연출자 나름의 코미디 코드가 현실의 화면 속에 녹아들어 꽤나 흡족한 코믹다큐멘터리가 됐다.

예술의전당에서 해남 땅끝까지 577km를 걷는 이 프로젝트에는 하정우 외에도 다수의 배우들이 동참한다. 알려진 대로 <러브픽션>의 공효진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남녀의 메인 롤은 정해졌다. 오프닝과 함께 영화는 나머지 배우들의 오디션 장면을 비춘다. 이 과정에서 16명의 신인 혹은 조연급 배우들이 선정되는데, 개중엔 독특한 프로필을 가진 이들도 눈에 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경험했다는 김혜화를 비롯해 미스춘향 출신의 이수인, 아침드라마계의 장동건이라는 이지훈과 옴므파탈 강신철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인다. 그러니 어떻게 찍어도 이야기는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 부분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한다. 대략 30%쯤이 낙오한다는 고된 여정에서 어느 누구도 탈락할 여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상태로 여정은 끝을 향해 나아간다. 배우들이 씩씩하게 목표치를 달성하며 낙오의 드라마는 끼어들 수 없게 됐고, 제작진의 입장은 난감했을 것이다. 게다가 예상과 달리 공효진과 하정우가 함께 한 프레임에 담기는 일도 거의 없다. 그는 앞에서 그녀는 뒤에서 서로의 목표 달성에만 공을 들인다. 작품의 명과 암도 여기서 갈린다. 스타가 기획한 데다 성취하기 어려우리라 예상됐던 목표가 그다지 어렵게 인식되지 않는다. 범접하기 어려운 이들의 적나라한 면모를 만날 것이란 기대 또한 충족되지 못한다. 현실에서도 하정우는 여전히 멋진 마초였고, 공효진은 등산용 두건조차 패셔니스타답게 소화해냈다. 그러니 배우의 입장에선 이 정도면 성공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영화다. 드라마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고민. 진심이 묻어났을 여러 차례의 장난과 하정우의 너글너글한 말솜씨가 이를 해소해준다. 다큐멘터리를 선호하지 않는 관객도 너그러이 즐길 수 있을 만큼, 이 영화는 충분히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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